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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넘으면 모내기 총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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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13일 남포특급시 인근의 논에서 모내기 준비작업이 한창이다. 기온이 예년보다 낮아 모내기 작업이 10여 일 늦어졌다.

짚으로 된 가마니와 자전거를 실은 트럭이 평양 학생소년궁전 앞을 지나고 있다. 평양=특별취재단

지난달 18일 오후 6시 평양시 외곽의 형제산 구역 도로 옆으로 15세를 전후한 청소년들이 쟁기 등 농기구를 어깨에 메고 줄지어 걷고 있었다. 농촌지원 활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날 오전 보통강역 앞 광장도 농촌으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빽빽했다.

북한은 지난달 15일 '총동원, 총집중' 운동에 들어갔다. 식량증산을 위해 농번기에 최대한 인력을 동원하려는 정책이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관계자는 "지난해 총동원 운동을 펼쳐 효과가 컸다"며 "올해도 중학교 3학년(12세) 이상의 학생들과 최소한의 근무인원을 제외한 근로자.노동자들이 모내기 등 농촌지원 활동을 펼친다"고 설명했다.

◆ "언제까지 얻어먹고만 살겠는가"=북한은 1990년대 이후 줄곧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 많은 사람이 굶어 죽기도 했다.

이에 북한 당국이 꺼내든 카드가 식량증산을 위한 '농사와의 전쟁'이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으론 식량난을 극복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민화협 관계자는 "우리 민족은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다. 상황이 오죽했으면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었겠느냐"며 "하지만 언제까지 얻어먹고만 살 수야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90년대 말부터 5년여에 걸쳐 대규모 토지정리와 개천~태성호 '물길'(인공수로) 건설 등 시설 개선에도 박차를 가했다. 민화협 관계자는 "기계영농을 위한 토지정리는 거의 끝났으며 자연을 개조한 물길공사는 전력과 양수기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 농업용수 확보를 '우리식'으로 해결한 공사"라며 "물길공사 후 서해안 농촌지대의 용수 걱정이 줄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인력동원 외에 종자개량과 과학영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는 인공수로 추가 공사와 함께 과학영농을 통해 수확량을 늘리는 단계다. 지난달 12일 취재진이 찾았던 농업과학원은 과학영농의 야전사령부다. 2600여 명이 근무하는 이곳은 종자개량, 토양침식방지, 지력향상, 비료개발 등 농사와 관련한 전반적인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이 종자개량이다. 종자개량 사업은 수확량이 많고 병충해에 강한 '룡성계통'의 벼와 무바이러스 씨감자 생산으로 이어졌다.

2000년부터 한국의 월드비전과 협력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수경재배에 의한 무바이러스 씨감자는 남북 협력으로 진행한 대표적인 종자개량 성공사례로 꼽힌다. 2008년에는 북한 전역으로 씨감자 공급을 확대해 지금보다 감자생산을 두 배 이상 늘리려는 목표를 세웠다.

농업과학원 관계자는 "농업과학자들은 2007년 800만t의 식량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실제로는 800만t이 아니라 1000만t, 1200만t을 생산할 수 있도록 농사를 크게 지을 생각"이라며 식량자급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 "경험농업에서 과학농업으로"=농사방법도 변하고 있다. 과거 경험에 기초해 농사짓던 '경험농업'으로부터 '과학농업'으로 바뀌고 있는 것. 밀식(密植)재배는 지력을 떨어뜨리고 많은 비료가 소요돼 악순환을 거듭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운 품종 개발로 소식(疏植)재배가 시험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농업과학연구원 이일섭(49) 대외과학기술교류처장은 "현재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는 소식재배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이라며 "소식재배로 보다 쉽게 농사를 짓고 종자를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농업 부문의 정보화도 한창이다. 예년의 기상과 토질정보 등을 입력해 모내는 시기와 비료 투입량, 비료 주는 시기 등을 과학적으로 계산하는 프로그램인 '포전길'개발도 막바지 단계다. 농업과학원 박석주(69) 과학참의는 "농업은 기상과 토양자원이 중요한 요소"라며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맞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산협동농장도 정보농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농장의 고명희(46) 관리위원장은 "정보농업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이라며 "농장의 토양.기후.품종을 포함해 10~20년의 자료를 종합하고 농장에 피해가 예상되는 요소를 종합해 프로그램을 작성하면 최적의 농사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식량난 극복을 위한 전쟁을 전개하는 가운데서도 에너지난, 농기계.비료 부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종자개발을 통한 수확량 증대도 인력동원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 7.1조치란=북한은 2002년 7월 1일 분배차등화, 경영자율권 및 독립채산제 확대 등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한 '경제관리개선조치'를 단행했다.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단행된 7.1조치는 북한도 '경제개혁'이라 평가하고 있다. 이 조치로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공급부족으로 야기됐던 물가인상분을 현실화해 각종 생필품값을 대폭 올리고 임금도 20배 이상 올렸다.

평양=특별취재단

◆ 평양 특별취재단 ▶취재 강영진.김영욱.안성규.홍병기.유철종.정용수 기자 ▶사진 신동연.김춘식 기자

▶자문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위원,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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