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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급 전시장'에 초대된 'B급 사진작가' 강홍구 합성사진으로 세상의 위선 까발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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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B급 영화'가 있듯이 'B급 작가'도 있는 것일까. 서슴없이 "나는 B급 작가"라 자처하며 등장한 강홍구(50)씨는 앞뒤 가리지 않는 저예산 영화 감독처럼 엉뚱하다. "작품 만드는 돈이 좀 덜 들까, 다른 매체보다 간편하지 않을까 싶어서 디지털 합성 사진을 골랐지요. 그런데 발목 잡히고 뒤통수 맞은 꼴이네요. 어렵고 어려워요." 값싸 보이는 디지털 합성 사진으로 세상의 위선을 까발린 지 10년. 세상이 변한 것일까. 'B급 작가'를 알아본 'A급 전시장'이 그를 초대했다. 9일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막을 올리는 '강홍구:풍경과 놀다'전은 맨땅에 머리를 박던 한 가난한 미술가의 숨은 진실 찾기다.

풍경은 남루하다. 말 그대로 'B급'이다. 이를테면 '그린벨트-세한도'는 저 유명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와 견주면 싸구려 냄새가 팍팍 풍긴다. 서울 근교의 개발제한구역에서 만난 낡은 집과 헐벗은 나무는 선비의 지조는커녕 개발도상국가의 새마을 찬가가 흘러나올 듯 을씨년스럽다.

풍경은 이지러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멋지게 등장하던 세트장을 가까이 찍어보니 온통 헛것이다. 멀쩡하던 동대문은 뒤에 막대기로 받친 합판 나부랭이요, 혈투가 벌어지던 '종3' 거리는 각목 몇 개가 지탱하는 가짜다. 그는 '드라마 세트' 연작에서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발가벗긴다.

그러나 풍경은 계속된다. 도시 변두리의 재개발 현장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은 망가진 장난감과 험상궂은 쓰레기뿐이다. '미키네 집' 연작은 사람이 떠난 땅에 남아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버려진 장난감의 운명을 초현실적인 화면 속에 그린다. 장난감 로봇 '철권'(사진(右))은 풍경 속에서 눈물겹게 놀고 있다.

관람객은 작가가 합성한 풍경 속 어딘가에 놓여있는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우리는 실제가 아닌 '만들어 낸' 공간 속에 살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가짜가 더 진짜같은 현실을 수없이 보았다는 작가는 말한다. "제 사진 속에서 상처받은 장소에 가 보았던 느낌,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일상적 허구에 대한 공감을 함께 하실 수 있다면 B급 작가로서는 영광이겠습니다."

전시는 8월 6일까지. 10일 오후 2시 로댕갤러리 글래스파빌리온에서 작가와의 만남, 7월 8일 오후 2~4시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 같이하기' 행사가 열린다. 02-2259-7781.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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