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overStory] BMW가 태어나기 전 … 그의 머리 속에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BMW의 총괄 디자이너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42)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는 미래를 꿈꾸고 이를 눈앞에 구현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또 "5년 후 추세를 예감해 디자인에 들어가 15년 이상 굴러다녀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느낌이 드는 차를 만드는 어려운 직업"이라고 평했다. 기자가 그를 만난 건 이달 초까지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독일 BMW의 2인승 Z4쿠페 발표회에서다. 독일 아우디의 월터 데 실바, 영국 재규어의 이언 컬럼과 함께 현존하는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힌다.

그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진 인터뷰에서 "영감을 구체화하는 수천 장의 스케치 작업을 통해 신차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난다"며 "자동차 디자인은 최근 공기역학(Aerodynamics)이라는 과학적 요소, 그리고 사회.경제적 흐름과 맞물려 있다"고 덧붙였다.

-차 디자인과 공기역학은 밀접하다고 하는데.

"공기역학 기술은 디자이너에게 필수다. 요즘 디자이너는 공학도에 가깝다. 신차가 도로에 바짝 밀착돼 안정적으로 굴러갈 수 있는지, 연비 개선을 위해 공기저항을 줄이는 방법은 무언지 고민하면서 디자인에 들어간다. Z4쿠페의 경우도 이런 흔적이 많다. (차량에 다가가며 설명한다) 뒷면은 고속(시속 200㎞ 이상)으로 달릴 때 트렁크 위(스포일러)에 생기는 바람(저항)을 끝까지 타고 넘게 디자인했다. 이 때문에 고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머리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면서 차고(車高)를 낮추는 것도 공기역학 기술이다. 바퀴의 휠은 브레이크를 밟을 때 마찰로 인해 생기는 열을 밖으로 뿜어낼 수 있도록 했다. 앞 범퍼의 구멍(공기 댐퍼)은 포뮬러 원(F1) 기술에서 왔다. 고속에서 공기를 뒤로 배출하게 하는 구조다. 자동차 디자인은 과학이다."

-최근 자동차 디자인 추세는 어떤가.

"멀리서 봐도 '아, 저 차가 BMW구나'하는 패밀리 룩(Family look)이 점점 강조된다. 소형차.대형차.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디자인이 제각각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다른 브랜드와 구별되는 통일된 디자인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BMW에서 지루한 디자인은 절대 금물이다. 보기만 해도 '잘 달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BMW는 사람의 신장처럼 생긴 라디에이터 그릴(키드니 그릴)과 긴 직선, 그리고 조각 같은 느낌이라는 컨셉트를 70년 이상 지켜 왔다. 이런 디자인 요소들이 다른 차와 차별화돼 BMW의 충성고객을 만들어 간다. (그는 즉석에서 변화해 온 키드니 그릴 대여섯 가지를 순식간에 스케치했다)"

-아무리 멋진 디자인이라도 양산하기 어렵다면 문제 아닌가.

"외관에 곡선을 많이 도입하면 생산 쪽에선 대부분 반대한다. 이때는 디자이너가 '이런 이유 때문에 이 곡선이 꼭 필요하다'고 설득해야 한다. 창의적 디자인이 생산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잖다."

-신차 디자인은 어떻게 진행되나.

"BMW에는 80여 명의 디자이너가 있다. 개발 차종이 결정되면 스케치를 응모한다. 일단 20~30여 가지 작품이 걸러지고 또 걸러서 최고 작품을 뽑아 최종 디자인에 들어간다. 이런 과정을 총괄해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고 개발 컨셉트를 유지하는 게 내 일이다. 찰흙으로 만든 모형이 나올 때 가슴의 두근거림은 이루 다 표현하기 어렵다."

-사회.경제 현상이 디자인에 영향을 준다고 강조해 왔는데.

"자동차 디자인은 시대 변화를 반영한다. 요즘 사회는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빨리 돌아가 디자인이 짧은 시간에 강렬한 인상을 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소비자들은 무언가 안정되고 지속적인 걸 잡고 싶어하는 양면성이 있다. 그래서 자신의 역사와 철학을 충실히 담아낸 브랜드를 선호한다. 미래를 담은 난해한 디자인이라도 브랜드가 지닌 근본을 어디엔가 반영해야 한다."

-현대자동차가 BMW 디자인을 많이 벤치마킹한다는데.

"승용차의 개발 컨셉트를 모른 채 외관만 보고 평가하긴 어렵다. 일본 렉서스가 BMW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는데 나도 공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브랜드 이미지를 디자인에 어떻게 담을까 하는 것이다."

◆ 반 호이동크는=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델프트 종합기술대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다. 유럽 GE플라스틱의 상품 디자이너를 한 뒤 91년 스위스 아트센터에서 2년간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했다. 92년 BMW에 입사해 줄곧 외관 디자인을 담당했고 지난해부터 BMW의 디자인을 총괄해 왔다.

리스본(포르투갈)=김태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