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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처법」 남용 전과자 양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 남용돼 전과자가 양산되고 있다.
61년 5·16 군사 정권에 의해 정치 깡패 등의 처벌을 위해 특별법으로 제정된 이 법률은 우선 적용 대상이 야간 또는 2인 이상이 공동으로 폭력을 행사한 경우 등으로 포괄적인데다 모법인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반의사불벌」 원칙을 배제하고 있어 사소한 개인 시비도 적발되면 전과자가 되고 마는 실정이다.
대법원에서는 이 법 시행 1년 만인 62년 사회적 불안 조성·사회 질서 문란 행위 외엔 야간일지라도 「폭력 행위법」적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판례를 남겼으나 일선 경찰은 이 같은 판례나 법 취지와는 관계없이 처리가 손쉬운 이 법을 여전히 남용, 경찰서마다 형사 사건의 절반 이상이 이 법 위반자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성동 경찰서의 경우 최근 1주일 동안 처리한 73건의 형사 사건 중 42건이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죄였으며 피의자 숫자도 1백8명중 70명이었다. 이 같은 사정은 다른 경찰서도 비슷해 접수되는 형사 사건의 절반 가량에 이 법이 적용되고 있다.
이들 피의자 중 상당수는 일상 생활 중, 특히 야간에 사소한 시비 충돌 끝에 연행돼 불구속 입건된 경우로 지난달 20일 오후 8시쯤 서울 홍익대 앞 주택가 놀이터에서 술김에 사소한 시비로 몸싸움을 벌이던 황모씨 (30·회사원)와 홍모 (27·고대 대학원생)·김모 (27·고대 대학원생)씨 등 3명은 마포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뒤 서로 사과, 합의했으나 이 법으로 불구속 입건되고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돼 전과자가 됐다.
법원·검찰에서도 「야간」「2인 이상」의 규정 때문에 이 법률을 적용하고는 있으나 입법 취지 자체가 일반 폭행 범을 처벌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 대부분 기소 유예· 벌금형에 처하고 있어 결국 법률 자체가 입법 취지와 동떨어져 불필요한 전과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빚고 있다.
기본법인 형법은 폭행을 「반의사불벌죄」로 규정, 피해자와 피의자간에 합의가 이뤄지면 형사 처벌을 않도록 하고 있으나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처벌을 강제하고 있고 「상습범」 외에 「야간」「2인 이상」 등도 모두 이 법을 적용토록 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
◇전문가 의견=서울대 신동운 교수 (형법학)는 『5·16 군사 정권이 사회 기강을 확립한다는 명목으로 정치 깡패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만든 법이 민주화 시대를 맞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며 『국가 보안법·사회 안전법 등과 함께 폐지해야 할 법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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