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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 업체 회계 부정 발견한 어느 회계사의 슬픈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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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한민국 회계는 망했나

22일 오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IFC빌딩 정문 앞.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으로 영업정지 제재를 받았던 안진은 이번에 또다시 삼바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데 이어 회계사 해고 문제까지 불거졌다. [조강수 기자]

22일 오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여의도 IFC빌딩 정문 앞.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으로 영업정지 제재를 받았던 안진은 이번에 또다시 삼바 사건으로 곤경에 처한 데 이어 회계사 해고 문제까지 불거졌다. [조강수 기자]

지난 20일 저녁 마포의 한 음식점. 유명 회계법인 소속 파트너 회계사 이모씨와 마주앉았다.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작년 한국 국제 회계신인도 꼴찌 #대우조선해양·삼바 등에 이어 #치과 임플란트도 분식회계 논란 #시총 1위 덴티움 감사한 회계사 #거래소 상장 전 서류 변조 적발 #증선위에 진술 후 해고 통보

“대한민국 회계가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한참 대화를 나누던 회계사가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망하다니?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국제적 회계신인도는 2016년 조사 대상 61개국 중 꼴찌에 이어 2017년에도 63개국 중 63위였어요. 이 정도면 망한 것 아닌가요?”

망한 거나 다름없네요. 이렇게 추락한 이유가 뭐죠?

“한마디로 ‘교각살우’와 ‘오불관언’(吾不關焉)입니다. 우리는 규정 중심의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을 따르다가 2011년 원칙 중심의 국제회계기준(IFRS)을 전면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IFRS의 해석 기준이 모호해 회계처리를 놓고 전문가들의 해석이 엇갈리면서 법 체제의 신뢰성이 저해된 거죠. 회계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졸속 도입한 부작용입니다. 또 국가나 조직이 어떻게 되든 내 이익만 차리면 상관없다는 이기주의도 한몫하고요. 기업의 회계처리 판단에 재량과 책임을 주지 않으면 제2, 제3의 삼바(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가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STX조선해양의 2조원대 분식회계(2014년, 감사인 삼정회계법인), 대우조선해양 2조원대 분식회계(2015년, 안진회계법인), 삼바 5조원대 분식회계(2018년, 삼정KPMG-안진회계법인)….

거대 기업의 초대형 분식회계가 줄줄이 터지고 있다. 회계 부정은 기업의 실적과 가치를 왜곡해 주주와 투자자에게 잘못된 결정을 내리도록 할 위험이 크다. 또 한 나라의 대외적 신인도를 현격히 떨어뜨린다. 신용사회의 적으로 간주된다. 우리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지만 미국의 엔론 사태에서 보듯 선진국에선 회계법인의 책임을 무겁게 묻는다. 회계기준을 변경해 자회사(종속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처리, 이익을 부풀렸다는 삼바 사건은 엄청난 손실을 이득이 난 것처럼 화장을 고친 해운사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 벌써 소송전으로 번졌다.

이미 분식회계 폭탄이 터진 해양·바이오 업계의 뒤를 치과 임플란트 업계가 이을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자산 규모, 이익, 주가, 시가총액 1위 업체인 덴티움을 상대로 2위 업체(매출액 기준으로는 1위)인 오스템임플란트가 한국공인회계사회,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에 상장 전부터 상장 이후까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분식회계’와 ‘상장 과정 의혹’ 공방이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 되고 있어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회계 부정 논란의 압축판이자 현주소인 셈이다. 이 사건은 일부 서류를 위·변조해 미국 현지법인을 관계회사가 아닌 종속회사로 회계 처리했다는 점에서 삼바 사건과는 역방향으로 진행됐다. 어떤 회사가 종속회사냐 관계회사냐가 중요한 것은 상장할 때다.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의 실질적 기준은 관계회사 등에 대해 내부 거래 행위를 통해 대주주 밀어주기를 했는지를 심사하도록 규정한다.

회계사 이씨도 이 사안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주장은 이랬다.

덴티움과 최대주주 정모씨 간에 체결한 주주 간 계약서. 체결 일자가 2010년 1월로 돼 있으나 감사인의 제출 요구에 2015년께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조강수 기자]

덴티움과 최대주주 정모씨 간에 체결한 주주 간 계약서. 체결 일자가 2010년 1월로 돼 있으나 감사인의 제출 요구에 2015년께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조강수 기자]

“2015년 6월 금융감독원에 의해 덴티움의 지정감사인(회계감사 총괄)으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에 있던 파트너 회계사 박모씨가 선임됐는데 회계 감사 과정에서 미국 현지법인인 덴티움 USA가 덴티움의 종속회사인 것처럼 ‘주주 간 계약서’가 위·변조된 사실을 발견했다. 이듬해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를 앞두고 있던 덴티움에는 상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악재였다. 특히 그 시기는 대우조선해양의 2조원대 분식회계 사건으로 안진회계법인이 금융위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와 대표이사 고발이라는 심각한 위기를 겪던 때이기도 했다.”
 즉각 박씨를 수소문했다. 가까스로 연락이 닿은 박씨는 회계사에겐 재직 중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 감사 관련 사항을 발설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마침 해당 사안의 내막을 조사 중인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실을 통해 일부 자료를 입수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덴티움USA는 2015년 기준으로 종속회사로 처리됐다. 의결권을 덴티움에 일임한다는 2010년 1월 작성 덴티움과 이 회사 최대주주 정모씨 간의 주주 간 계약서가 근거였다. 그러나 이는 작성 시기가 달랐다. 회계사 박씨가 실제 작성일이 언제인지 답변하라고 요구하자 만든 거였다.
 덴티움 USA는 정씨가 100% 출자해 설립하고 부인이 대표로 있는 회사다. 덴티움 USA의 경영상태가 악화돼 자본이 완전 잠식됐지만 덴티움은 대여금을 지원하고 제품 수출을 계속했다. 만약 덴티움 USA가 관계회사가 되면 대주주에게 이익 밀어주기를 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게 돼 상장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덴티움은 이전 담당 회계법인과 공모해 전기를 감사한 회계사의 감사서류도 변조해 박씨에게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위·변조 사실을 알게 된 박씨는 감사보고서 발행을 중단했다.
 이에 대해 덴티움 관계자는 “당시 금감원의 지도를 받아 2015년 이전 것도 모두 관계회사로 수정하고 감사보고서에 공시했다”며 “이듬해 덴티움USA에 대한 대여금을 포기하고 출자로 전환, 지분율을 45.2%에서 96%로 높여 종속회사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은 회계 정보를 위조, 변조, 훼손 또는 파기한 경우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덴티움은 2012년 코스닥 상장을 추진했다가 좌절됐는데 당시 덴티움USA 문제 등이 코스닥시장 본부의 가장 큰 불허 사유였다고 한다.

덴티움의 기업 홍보 문구 [홈페이지 캡처]

덴티움의 기업 홍보 문구 [홈페이지 캡처]

안진회계법인의 경영진도 회계사인 박씨보다 고객사의 입장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금융당국의 감리 과정에서 덴티움의 주주간 계약서 위조 사실을 진술하자 바로 다음 날 회계법인 부대표가 진술을 철회하라고 문자와 e메일을 보냈다. 또 위조라고 표현한 부분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박씨는 거절했다고 한다. 박씨는 2017년 5~7월 한국공인회계사회, 감리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에 위조 사실 발견을 차례로 진술했고 마지막 증선위 진술 직후 해고 통지를 받았다. 그해 3월 안진회계법인이 감사인으로 지정한 8명의 파트너 회계사들 중 박씨가 유일한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다. 박씨는 주변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대우조선해양 사건 때 구속된 배모 전 이사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박씨는 몇년전엔 안진회계법인 경영진이 현장에 나가지 말고 대기업 상장회사의 감사보고서에 서명하라는 불법지시를 거부하기도 했단다. 그로 인해 해당 감사에서 제외됐고 이후 인사고과에서 계속 불이익을 받았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우조선해양 분식사건의 판결문에 등장했던 것과 유사한 안진회계법인의 악습에 반기를 든 것이다.
 현재 박씨는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데 대한 보복으로 구조조정당했다’며 공익신고자보호조치 관련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안진회계법인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으나 담당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상한 일은 또 있다. 임플란트 업계는 업체별 회계처리 방식이 달라 순위가 뒤죽박죽이다. 지난해 매출액은 오스템이 3977억원으로 1위다. 2위 덴티움(1506억원)보다 3배 이상이다. 그런데 시가총액은 오스템이 3000억원이 적다. 이에 따라 분식회계 논란이 제기됐지만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은 나서지 않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의 기업 소개 글 [홈페이지 캡처]

오스템임플란트의 기업 소개 글 [홈페이지 캡처]

분식회계 논란의 핵심은 ‘임플란트 패키지 계약(장기물품공급계약)’ 방식이다. 정상적인 회계 방식은 매출 계약 후 고객이 주문한 대로 출고하고 출고한 대로 매달 매출로 인식한다. 미출고분은 부채인 선수금으로 처리한다. 그런데 패키지 계약은 치과병원들과 계약한 금액의 대부분을 특정 품목군으로 한꺼번에 출고한 뒤 매출로 인식한다. 치과의 주문과 상관없어 반품률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경쟁업체들은 “창고에 있는 제품을 치과에 옮겨놓고 매출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매출과 이익을 부풀리고 부채를 낮춰 회계기준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약 2위 업체도 1위 업체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따라 할 경우 매출액은 2000억원, 영업이익은 1000억원가량이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양동훈 한국회계학회 회장은 “이런 회계 처리 방식은 조선업이나 건설업 등 장기수주 산업에서 종종 쓰이는 수법”이라며 “저가 장기계약과 회계분식, 창고 옮기기 매출 등의 편법 대신 연구개발을 통한 양질의 제품 생산, 영업 성장, 건실하고 장기적인 재무구조 개선 등의 정도를 걸어야 기업 체질이 강화될 것”이라고 권고했다. 이에 대해 덴티움 관계자는 “매출 인식 문제를 갖고 분식이라고 하는 것은 황당하다”며 “회계법인이 컨설팅한 대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외부감사제는 기업이 작성하는 재무제표에 대한 적정성을 점검해 주주, 투자자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를 보호하는 공공재적 서비스다. 하지만 기업이 감사인을 선택하는 자유수임제가 40여 년간 이어지면서 기업과 감사인들이 유착을 넘어 종속관계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노미가 된 감사 환경 개선을 위해 금융감독원이 감사인을 지정하는 ‘지정감사제’가 2020년부터 전면 시행된다. 회계법인·회계사들과 기업 간의 유착 비리를 막고자 만든 건데 전 세계에서 드문 사례다. 사회적 비용이 크다. 일각에서 선진국처럼 신용범죄에 대해선 법적 형량을 대폭 강화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고언도 내놓는다.

영화 '더 포스트'의 포스터 [네이버 캡처]

영화 '더 포스트'의 포스터 [네이버 캡처]

다시 회계사 이씨의 직설이다. “영화 ‘포스트’ 봤어요? 워싱턴포스트가 베트남전의 비밀이 담긴 ‘펜타곤 페이퍼’를 손에 넣고 특종 기사로 내보내기로 결정하면서 한 말이 뭔지 압니까? ‘우리 사법부를 믿는다’였어요. 우리는 그게 되나요? 금융당국, 수사당국, 회계당국, 그리고 사법당국까지 아무리 소리쳐도 안 움직여요. 자기들이 보고 싶은 대로 보고, 하고 싶은 대로만 하지. 이민 가고 싶다는 동료들이 부쩍 늘었어요.”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