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때 엄마 남자친구에게 당한 악몽…15년만에 단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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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성범죄 피해자가 당시 모친의 남자친구였던 가해자를 15년 만에 단죄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29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B씨(48·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9∼10세이던 아동을 대상으로 범행해 죄질이 나쁘다"며 "다만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오래 전 일이고 사건 특성상 목격자나 뚜렷한 증거가 없었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라 기소하기로 결정했다"며 "결국 B씨도 자신의 잘못을 털어놨다"고 말했다.

검찰 설명에 따르면 법원이 B씨에게 선고한 형량은 ‘1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법정형인 15년 전 법에 따른 처벌이다. 검찰은 "지금 B씨와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징역 5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가 현재 법에 비해 낮은 수준의 처벌을 받게 됐다는 의미다.

A씨가 15년 전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올해 초 '미투'(Me Too·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이 확산되면서다.

2003년 6월 어느 날 당시 어머니와 교제하던 B씨는 모텔에서 불과 9살이던 A씨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B씨는 이듬해 1월에도 A씨에게 악행을 저질렀다. 어렸던 A씨는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미투 운동을 접한 그는 용기를 내 늦게나마 B씨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처음 찾아간 대학 상담기관은 A씨에게 "고소 기간이 지나 어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담 내용은 성범죄가 친고죄에서 제외됐다는 사실을 간과한 잘못된 설명이었다.

명예훼손처럼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는 통상적으로 고소 기간이 6개월이었다. 친고죄로 분류됐던 성범죄에 대해서는 고소 기간을 1년으로 두는 특례규정이 있었는데 이 조항은 2013년 4월 삭제됐다. 성범죄를 친고죄에서 아예 제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교내 상담기관의 잘못된 안내에 실망했던 A씨는 이후 B씨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선 검찰에 직접 고소장을 냈다.

수사가 시작됐고 지방의 한 법원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던 B씨는 올해 8월 재판에 넘겨지면서 직위 해제됐다. 그는 검찰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재판과정에서 결국 잘못을 인정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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