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한반도' 1500만 명? "고이즈미 총리가 홍보해 주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2003년 말 '실미도'의 개봉을 앞두고 강우석 감독은 영화사 직원들과 내기를 했습니다. '실미도'가 몇 명이나 동원할지 맞혀보자는 것이었지요. 그때 감독 자신이 공공연히 밝힌 예상치는 "1000만+1명"이었습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직원들은 내심 황당했다고 합니다. 직전까지 역대 최고 성적이 '친구'의 818만 명이었으니까요.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실미도'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명 관객 동원의 벽을 넘어섰고, '승부사 강우석'의 위력을 확인시켰습니다.

강 감독은 최근 또다시 내기를 시작했습니다. 7월 초 개봉할 '한반도'의 관객 수 맞히기입니다. 듣자 하니,'실미도'의 전례 때문에 직원들의 예상치가 꽤 올라간 모양입니다. 과연 감독 자신은? 사석에서 슬그머니 물어보니 딱 잘라 말합니다. "1500만 명". 듣는 순간 잠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왕의 남자'의 최고 기록(1230여만 명)을 훌쩍 넘는 이 수치가 진짜 가능하다는 판단인지, 아니면 대작의 개봉을 앞둔 감독의 자기 최면인지.

'한반도'는 '실미도'보다 조금 많은 100억원대 순제작비를 들인 대작입니다. '실미도'처럼 실화가 소재는 아니지만, 현실적인 발화점을 품고 있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바로 한.일관계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남북 간 경의선 철도가 정식 개통되려는 무렵, 일본이 구한말의 옥새가 찍힌 문서를 빌미로 철도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랍니다.

촬영 단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올 봄 이후 급격히 악화된 한.일관계는 이 영화에 호재로 보입니다. 충무로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한반도'의 최고 홍보요원"이라는 농담이 돌 정도니까요. 물론 관객이 녹록지는 않죠. 지나친 민족주의 색채라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가 영화의 전모를 보지 못한 상태의 추측입니다만.

사실'실미도' 이후 '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 등 1000만 명 돌파 영화가 세 편이나 나온 것은 영화 자체의 힘만은 아닙니다. 멀티플렉스의 급증을 비롯한 영화 유통시장의 변화가 뒷받침된 덕분이죠. 실제로 최근 10년 새 국내 극장가의 연간 전체 관객 수는 무려 세 배 넘게 늘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성장세가 언제까지 갈 것이냐죠. 50%를 크게 웃돌던 한국영화의 점유율만 해도 지난달 들어 10개월 새 최저인 33.9%(서울 기준.CJ CGV 집계)로 떨어진 상태입니다. 고비마다 폭발력 있는 콘텐트의 등장으로 파이를 키워온 한국영화의 성장사가 재현될지, 2주 간격으로 '한반도'와 '괴물'이 등장하는 7월이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

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