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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예산] 균형재정 고집 … 경제 회생 失機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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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부의 내년 예산안은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균형재정을 억지로 지키느라 무리한 흔적이 역력하다. 빠듯한 재원을 갖고 복지예산을 키우다 보니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사상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게다가 경기회복 전망이 불투명한데도 경기부양을 위한 예산은 반영하지 않아 경기회복이 늦어질 경우 또 다시 추경 편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공적자금 상환을 위해 예산에서 매년 2조원씩 갚기로 해놓고도 1년 만에 1조8천억원의 상환을 연기해 신뢰성에도 흠집을 냈다.

◇ 균형재정 고수=정부의 예상대로 내년에 균형재정을 지키게 되면 외환위기로 적자국채를 발행하기 시작한지 7년 만에 균형재정으로 복귀하는 셈이다. 정부는 내년 경제가 5.5% 성장할 것이란 가정하에 그만큼 세금이 걷힐 것으로 전망하고 긴축예산을 짰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재정지출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학계와 민간의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극심한 내수부진에다 환율 급락으로 수출 감소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재정균형에 집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기회복이 늦어지면 내년에 또 예산 조기집행이나 추경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엔 올해 쓰고 남을 세계잉여금이 한푼도 없어 경기가 부진하거나 태풍.홍수 등 재해가 발생해 추경을 편성하면 어차피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 성장보다 분배=내년 예산안 중 가장 증가폭이 큰 분야는 사회복지 예산이다. 12조원으로 올해보다 9.2% 늘었다. 이에 따라 1997년 일반회계 중 6.5%에 불과했던 복지예산의 비중은 내년에 10.3%로 높아진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해온 SOC 투자는 17조원으로 올해보다 6.1%나 줄어 예산편성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SOC는 92년 3%가 줄어든 것을 제외하곤 해마다 10%대의 증가세를 유지해 왔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참여정부의 공약이지만 첫 예산은 분배 쪽으로 치우치고 만 셈이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는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봤자 효과는 크지 않다"며 "예산편성의 우선순위를 경기를 살리는 데에 두고 일자리를 창출해야 취약 계층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조세부담률 감소 의문=재경부는 내년 조세부담률이 22.6%로 올해 전망치 22.8%보다 0.2%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외환위기 이후 계속 높아지기만 했던 조세부담률이 꺾이는 셈이다. 근로자들과 기업에 대한 감세, 특소세 인하가 조세부담률을 낮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부동산 과표 현실화가 예정대로 추진되면 지방세인 종토세와 재산세가 오를 전망이어서 실제 부담률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1인당 조세 부담액은 3백18만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인구 증가가 정체되면서 국민 한사람당 세금 부담만 늘어나고 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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