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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평가-4개의 손익계산|송진혁<논설위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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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간평가의 정치방정식은 하도 복잡하고 어려워 보통머리로는 해답을 얻어내기가 힘들다. 국민투표를 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문제가 따르고 연기하기도 어렵고 강행하기도 쉽지 않다.
여당이나 야당이 이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도 신통한 묘안을 찾지 못한 채 이런 저런 소리만 끝없이 나오는 상황을 이해할 만도 하다.
중간 평가를 푸는 방법으로는 대체로 네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다. ①여-야가 정면대결로 국민투표를 하는 것 ②협상으로 여-야 대결을 회피하는 국민투표 ③보류 또는 연기 ④국민투표를 하지 않는 방법 등이다.
여-야가 어느 길을 갈는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이런 방법들의 장단점이나 현실성을 가상을 통해 한번 따져 본다면 대충 이렇게 될 것 같다.
첫째, 정면대결로 간다면 정권과 4당 운과 3김씨 등의 정치생명을 건 대회전이 될 공산이 짙다. 여-야는 총력을 다해 조직을 동원하고 어마어마한 정치자금을 뿌릴 것이며 대형집회와 유세로 전국이 떠들썩할 것이다.
이 경우 승부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야권이 효과적인 단합을 이룩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불신임 운동이 설득력을 갖자면 국민이 안심할 만한 집권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야권이 그걸 해낼 수 있느냐가 문제다.
벌써 야당 가 일부에서는 3야당의 협력을 가능케 할 방안으로 내각제가 조심스레 거론되고 대통령·국무총리·국회의장 등을 대상으로 한 3김씨의 역할분담론도 운위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봤듯이 야당의 후보단일화나 통합은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며, 현재로선 필요성 또는 당위 론에 머무르는 상태인 것 같다.
정면대결에서 노 정권이 이기면 훨씬 강력해진 입지에서 정국주도권을 장악하고 하기에 따라서는 여소 야 대를 극복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야권은 격랑에 휩쓸리기 쉽다. 패배에 따른 인책 론·3김씨 퇴진 론·세대교체론·야당 통합 론 등 이 나올 것이 뻔하다. 그 중에서도 정면대결을 주장했던 강경파에게 타격이 클 것이다. 즐겁던「야 대」시절은 끝나고 고통스런 재편의 길을 걷게 될 공산이 크다.
노 정권이 불신임된다면 노 대통령의 퇴진은 불가피하고 내각과 민정당의 총 사퇴도 예상되는 일이다. 그리고 과도내각 하에서의 3김씨 간의 집권경쟁을 예상할 수 있다. 지리멸렬의 여당세력은 이 경우 지연·구연 등을 따라 민주·공화당 쪽으로 분산될 것으로 볼 수 있고 종래 민정·민주로 양분되던 영남세가 민주당으로 결집될 가능성을 내다볼 수 있다.
지역의식이 금방 변할 리가 없는 만큼 이렇게 되면 민주당의 입지가 가장 강화되고 평민·공화당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돌아오는 몫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특정인의 단독집권이 가능한 상황전개를 점치기는 어렵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는 극도로 뒤숭숭하고 경제에도 큰 악영향이 갈 것이며 어떤 돌발사가 터질는지 예측하기 어려운 불안국면이 될 가능성이 많다.
둘째 방법은 여-야 협상에 의해 야권이 불신임 운동을 벌이지 않거나 극히 제한적인 운동을 벌여 국민투표 결과의 정치적 의미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요즘 여야가 모색하는 것이 이 방법 같은데 정면대결의 위험성을 서로 피하는 방법이다. 협상을 통해 가령 전·최씨 증언, 5공 인사처리 등으로 야당의 체면을 세워 주고 대신 야당은 증간평가를 정권경쟁의 기회로 삼지 않는 방법이다.
여권은 비교적 쉽게 국민투표를 넘기게 되고 야권은 여소 야 대를 그대로 유지하게 돼 좋다. 여기서 신임을 얻으면 노 정권의 안정감은 다소 강화되겠지만 정국주도권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50%미만의 지지를 받을 경우 노 정권의 퇴진은 불가피해진다고 봐야 한다. 야당 측으로서는 재야세력의 호된 비판이 괴로울 것이다.
셋째 여-야 협상에 의해 중간평가를 연기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요즘 야당은 5공 청산과 민주화조치를 한 후 중간평가를 하라고 연기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당으로서는 보장 없는 단순연기에 응하기는 어렵다. 5공 청산 후에 하라고 하지만 5공 청산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거니와 이런 표류정국을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아예 국민투표를 하지 말자는 주장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돈 많이 들고 불필요한 여야대결만 가져올 국민투표를 왜 하느냐는 것이 그 논거다. 대신 4당 대표의 공동선언이나 국회결의로 떼 울 수는 없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나약한 정부」라는 이미지를 중간평가를 통해 씻으려는 노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 방법을 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뜩이나「야 대」에 눌려 기를 못 펴 왔는데 이렇게 야당신세를 지다가는 앞으로 남은 4년 임기의 안정적 정권운영이 어렵다는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약을 공약대로 실천하지 않았다는 부담도 남게 되므로 이래저래 정권의 입지가 약화될 우려가 있다.
네 가지 경우에 대한 이런 가 상이 얼마나 들어맞을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있을 수 있는 이런 방법들을 훑어볼 때 몇 가지 확실한 것은 떠오른다. 우선 정면대결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고 국민이 치를 대가가 너무 엄청나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평가 때문에 정국이 언제까지나 표류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백하고 노 정권의 입장에서는 이제와 서 국민투표를 회피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점도 그렇다.
그렇다면 중간평가의 바람직한 실시방법의 윤곽도 거의 떠오르는 셈이다. 여-야 대결을 회피, 또는 자제하는 국민투표의 실시다. 여야의 입장을 같이 살리면서 적절한 시기조정을 한다면 이런 방법에 합의 못할 까닭이 없다. 실제 따지고 보면 정치권에서 진정으로 정면대결을 원하는 사람은 없거나 극소수다.
그런데도 이런 방법이 전면에 부상하지 못하는 것은 고질적인 선명 콤플렉스와 명분론 때문이다. 과연 싫어하면서도 정면대결의 길을 갈 것인지, 그것을 회피하는 정치력을 발휘할 것인지 중간평가라는 방정식은 제도정치권의 수준을 재는 자(척)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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