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프로들의 무릎을 치게 만든 161, 163의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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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4국
[제7보 (150~167)]
黑. 왕 위 李昌鎬 9단 | 白. 도전자 曺薰鉉 9단

일본의 초대 본인방 산샤(算砂)는 임종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

"바둑이라면 패를 내서라도 살아나겠지만 꺼져가는 목숨은 어찌할 수 없구나."

전국시대 때 오다 노부나가(直田信長).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등과 교류하며 바둑을 부흥시켰던 산샤는 평생 정법을 강조했던 사람이지만 죽음에 임하여 패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변화를 즐기는 바둑은 패를 좋아한다. 이창호9단은 이 판처럼 주로 패를 방어하는 쪽에 선다.

바로 이 무렵 문제의 150이 등장했다. 曺9단은 좌변에서 백?의 손해패를 쓴 이상 최강수 외엔 다른 길이 없다고 봤다. 손해 덕분이지만 좌변에 팻감이 생겼다. 그 팻감을 바탕으로 우변을 관통한다면 이 판은 역전의 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曺9단은 152,158의 손해도 그래서 서슴지 않고 감수했다.

그러나 이 같은 백의 뼈저린 노력은 161,163이란 가벼운 후퇴에 의해 심각한 좌절을 겪게 된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161,163이야말로 프로들의 무릎을 치게 만든 대목이다. 백은 소원대로 162로 때려내며 우변을 기세좋게 관통했다. 그러나 문득 판을 살피던 프로들은 이렇게 서로 묻고 있었다.

"백이 얻은 게 뭐야?"

무엇보다 163의 사두(蛇頭)로 인해 중앙이 크게 지워졌다는 게 백의 보이지 않는 손실이었다. 중앙이 없다면 승부도 없는 것. 더구나 165로 두자 166이 불가피했고 167로 따내자 패가 재개되고 말았다.

어수선한 가운데 150이 이 판의 마지막 패착으로 지목됐다. 그래도 승부를 보려면 '참고도'처럼 중앙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것. 흑이 패를 양보한다고 가정하면 미세한 승부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흑은 4로 물러서지 않고 A로 버텨올 것이고 그때는 어찌할 것인가(154.157.160은 패때림, 167=151).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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