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은 피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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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세대 5개 병원노조가 파업 결행일보 직전에서 병원 측과 막판 타결을 봄으로써 파업을 극적으로 모면했다. 연세대법원 노조원 2천여 명은 파업 찬반투표 결과 90%의 찬성으로 오늘부터 실력행사에 들어가기로 했으나 최종 순간까지 협상을 포기하지 않고 의료원 측과 협의를 거듭한 끝에 8개항에 합의하고 파업을 철회했다.
이로써 의료인이 고통받는 환자를 버리고 떠나는 최악의 사태는 면하게 되었으며 환자와 가족들 또한 안도케 되었다.
우리는 고통받는 환자에게 구원의 손길을 주고 고귀한 인간 생명의 소생을 직분으로 한 의료인들이 이성을 잃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제심을 발휘해 타협과 양보의 미덕을 보인 직업정신을 높이 사고 싶다.
원만히 타결을 보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병원기능이 마비되었더라면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 것인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환자와 가족들의 아우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들이 이방 저 방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간호사나 의료기사·약사 등 이 없는 의사 혼자만의 수술이나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환자가 다른 법원으로 옮긴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대부분의 법원들이 그러하듯 병실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운데다 줄곧 치료해 오던 의료진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것도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나 선언을 새삼 빌릴 것도 없이 의술의 고결함과 의료인의 사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는 병자에게는 인간애의 봉사와 희생이 필요하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가 희생될 수 없고 환자가 담보가 되어서도 안 된다.
의료인에게 박애정신이 요구되고 의료인의 노사분규가 다른 노사분규와 같아서는 안되며 법적 차원에 앞서 높은 도덕성이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의료인도 생활인인데 무조건의 희생과 봉사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도 가족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고 노력에 상응한 적정수준의 보수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점에서 그동안 7차례에 걸친 협상에도 불구하고 재정 적자를 내세워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던 연세대 병원 측이 끝내 노조 측 요구를 수용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파업」이라는 수단이 나오기 전에 서로가 한 발짝씩 양보했던들 모양이 좋았을 것이고 파업결의후의 수용이라는 선례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와 같은 노사간의 나쁜 선례는 서울지하철의 경우에서 보듯이 선 극한투쟁-후 협상이라는 고질적 폐습으로 굳어 버릴 우려가 있다.
경희대의료원노조도 쟁의발생신고를 마쳤지만 노조원들이 파업을 결의하기 전에 대화와 양보로 타결을 보기 바란다. 더구나 시한부 파업에 들어간 전남 22개 의료보험조합노조나 다른 사업장 노조도 노사협상을 마치 전쟁에서 고지를 점령, 극한으로 치닫기만 하는 태도를 버리고 서로가 한 발짝씩 물러서는 미덕을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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