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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분규 무엇이 문제인가|모호한 합의 각서 문구가 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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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 지하철 노조가 6일 0시부터 시작키로 한 무임 승차 운행은 이번 분규 재연 초부터 예고됐던 것이다.
합의 각서 이행 요구 등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방법으로 파업이란 극한 수단까지도 논의했던 노조 측이 이 같은 방법을 택한 것은 시민의 발을 묶는데서 오는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지하철 공사 측에는 금전적 타격을 주어 투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노조 측은 그러나 무임 승차 운행이 파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조원들이 정상 출근, 지하철 정상 운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하되 다만 승차권 검표만을 거부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노조 측은 또 이 경우 승객들이 요금을 내거나 내지 않는 문제는 전적으로 승객들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하철 공사 측은 승차권 검표 거부도 명백한 파업 행위라고 주장,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은 만큼 노동부에 노동쟁의 조정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지난달 21일부터 재연된 이번 분규는 노조 측이 지난해 10월 노사간에 타결된 합의 각서이행을 촉구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노조 측은 이후 28일 오전 비상 총회를 소집, 곧바로 본관 점거 농성에 들어갔고 자신들의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날 이같이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분규도 지난해처럼 합의 각서 중의 문구 해석 문제에서 비롯됐다.
쟁점이 된 것은 합의 각서 10개항 중 4항의 「기본급의 개선책으로 지하철 근무 수당 (일종의 직종 수당으로 모든 직원들에게 기본급의 l5% (정률 지급)를 올 1월부터 기본급화 한다」는 구절.
지하철 공사 측은 지난 1월부터 시행키로 한 근무 형태 변경 (8시간 근무제, 정원 조정, 주휴일 및 법정 휴일) 때의 각종 수당 산출 기준을 현행 기본급을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주장인 반면 노조 측은 문구 해석상 지하철 근무 수당을 기본급화 한 후의 기본급 (현재의 1백15%)을 기준으로 근무 형태 변경에 따른 각종 수당을 산출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공사 측은 또 기본급을 포함한 보수 체계 문제는 현행 24시간 맞교대를 하루 8시간 3교대제로 바꾸는 등 근무 시간 변경 등과 병행돼야 하는 문제로 이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맞교대제와 3교대제는 수당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공사 측은 『이에 따라 25일 노조 측에 협의 공문을 보내는 등 수 차례 협상을 제의했으나 한차례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협의보다 홍보·시위를 앞세우는 것은 단체 협약에 위배되는 불법 행동』이라고 맞서고 있다.
공사 측은 따라서 이번 문제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사항」으로 아전인수식의 해석을 들어줄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노조 측은 그러나 『이 문제는 「액수」 가 아니라「약속」 사항으로 공사 측이 합의 각서에서 「지하철 근무 수당의 기본급화는 89년1월부터 시행한다」고 명문화돼 있기 때문에 이의 이행을 촉구할 뿐』이라고 강변한다.
지난해 10월5일 파업 위협에 서울시와 지하철 공사가 노조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도 같은 해 6월 노사간에 합의한 합의 각서 3개항 중 1개항의 모호한 문구 때문이었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기능직과 고용직에 대해 3호봉 (3만3천원)을 가산 지급한다」는 조항.
노조 측은 이를 두고 『3호봉을 본봉에 가산시켜 지급해야 한다』며 『이를 기타 수당에도 합산시켜 평균 8만8천2백원을 매달 지급하라』고 요구했었다.
이에 반해 서울시와 지하철 공사 측은 『본봉 가산 조건이 아니라 특별 수당 형식으로 지급하겠다는 의미였다』며 노조 측 얘기는 부당하다는 주장을 내세웠었다.
그러나 이때 사태 해결을 위해 작성한 합의 각서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문구 때문에 또다시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번 분규도 노조 측의 내심이야 어떻든 이 같은 불씨의 여지를 만든 것은 서울시나 지하철 공사의 책임이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울시와 지하철 공사 측은 이번 사태를 노조 측의 「어거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문제가 된 조항에 대한 법률가의 전문적 해석을 통한 제3자의 객관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다. <민병관 기자>

<노사 분규 일지>
◇87. 8. 12 노조 설립
◇87. 9. 17 1차 단체 교섭 시작
◇87. 11. 13 쟁의 발생 신고·총파업 예고
◇87. 11. 18 교섭 타결 「직제 개편 양해 각서」 체결 (1차)
◇88. 5. 14 직제 개편 촉구 대회
◇88. 5. 31 1차 노사 협의 결렬
◇88. 6. 1 쟁의 발생 신고
◇88, 6. 15. 「각서 불이행」 파업 돌입 결의
◇88. 6. 17. 일시 파업·교섭 타결 「양해 각서 이행을 위한 합의 각서」 체결 (2차)
◇88. 8. 24 「합의 사항 불이행」 파업 결의
◇88. 9. 3 파업, 올림픽 이후로 유보
◇88. 10 .4 합의각서 이행 촉구 준법 투쟁 돌입
◇88. 10. 5 「직제 개편 합의 각서」 체결 (3차)
◇88. 11. 19 차량 기지 소속 노조원, 인사항의 부분 파업
◇89. 2. 21 합의 각서 불이행 규탄 대회
◇89. 2. 27 대의원, 집행부 비상 연석 회의
◇89. 2. 27 합의 각서 이행 촉구 농성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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