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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급한 시진핑, 대북제재 완화 공개 거론 안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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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오른쪽)이 18일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했다. 이날 오전 강원도 고성 화진포휴게소에서 방북에 앞서 현 회장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인사하고 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개최한 건 2014년 이후 4년 만이다. [뉴시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오른쪽)이 18일 금강산관광 2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했다. 이날 오전 강원도 고성 화진포휴게소에서 방북에 앞서 현 회장과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인사하고 있다.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공동으로 기념행사를 개최한 건 2014년 이후 4년 만이다. [뉴시스]

싱가포르와 파푸아뉴기니를 잇는 5박6일간의 순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중국·러시아 정상 또는 정상급 인사와 북핵 문제를 놓고 연쇄 회담을 벌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당사국들의 미묘한 입장 차가 노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 미·중·러 연쇄 회담 결산 #펜스 “제재 완화 허용 못한다” 강경 #청와대 “푸틴과 포괄적 완화 논의” #‘제재 완화’ 둘러싼 국제 이견 확인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시작으로 15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1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지난달 유럽 순방과 달리 문 대통령은 이번엔 직접적으로 대북제재 완화 필요성을 제기하진 않았다. 제재 전선을 두고 형성된 미국 대 중·러의 대립구도를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을 만나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 NBC방송 인터뷰에선 “2차 정상회담에선 의심스러운 모든 무기의 정체를 확인하고, 개발 시설의 위치를 파악하며, 사찰단을 보내고,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계획을 도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이 이행될 때까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유지함으로써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현 시점에서 대북제재 완화는 허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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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러시아·중국의 기류는 달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만났을 때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긴 어렵지만 포괄적으로 제재 완화에 대해 말씀을 나눴다”고 밝혔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한·중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양국이) 더욱 긴밀히 공동 협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내년 편리한 시기에 한국과 북한을 교차 방문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 양 정상은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북한 비핵화 해결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은 이미 “대북제재를 적절한 시점에 완화해야 한다”(마자오쉬 유엔 대사)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주파수가 맞는 지점이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 한·중 정상이 대북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것은 미·중 간 무역전쟁 해결이 시급한 중국이 신중한 접근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이 방북 시점을 연내가 아닌 내년이라고 못 박은 것도 미국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중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북한의 태도가 이상해진다고 의심하는 상황에서 굳이 북·미 정상회담 전에 방북해 미국을 자극하고 상황을 껄끄럽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중국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입장 차이는 아세안 관련 다양한 정상회의들의 결과물인 의장성명에서도 드러났다.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의장성명에서는 “우리는 완전한 비핵화(CD) 달성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주목했다”고 했는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의장성명에는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달성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약속했다”고 돼 있다. 아세안+3 회원국에 미국 등 5개국이 추가된 협의체가 EAS다. 이와 관련해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EAS 의장성명 사전 조율 과정에서 한국은 북한을 배려하기 위해 CVID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CVID 문구는 미국 측 요구로 포함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세안+3 의장성명에는 ‘판문점 선언, 평양 공동선언,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이행 촉진을 위한 노력’이라는 문구도 들어갔으나, EAS 의장성명에는 빠진 것도 눈에 띈다.

유지혜·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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