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커제의 그림자 때문이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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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6강전> ●신진서 9단 ○리샹위 5단

5보(49~63)=49가 멋진 행마인 이유를 살펴보자. 먼저 49 대신 '참고도' 혹1로 알기 쉽게 느는 진행은, 백4, 6으로 손을 돌리고 백8, 10으로 자세를 잡아 흑의 우세가 순식간에 지워진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단숨에 날려버리는 꼴이다. 지금 모양에선 49가 모범답안과도 같은, 멋진 한 수다.

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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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에서 백은 50, 52로 자신의 돌을 한차례 보강한 뒤에야 54로 반발했다. 바로 반발하지 못하고 타이밍을 한차례 늦춘 이유는 간단하다. '참고도 2' 백1로 즉각 뚫고 나가면 흑2~8로 다시 틀어막혀 별 소득이 없기 때문. 게다가 흑은 A와 B를 맛보기 하는 짭짤한 뒷맛까지 남겨둘 수 있어 여러모로 성공이다.

참고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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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까지는 피할 수 없는 쌍방 최선의 수순. 하지만 리샹위 5단은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앞서 저지른 자신의 실수로, 반상의 흐름이 자신에 불리하게 뒤틀렸다는 것을 말이다. 바둑판을 내려다보는 그의 낯빛이 어둡다.

참고도2

참고도2

리샹위 5단은 1997년생으로 커제 9단과 동갑이다. 어린 시절에는 남다른 기재로 촉망받았지만, 주변의 기대만큼은 성장하지 못했다는 평이다. 커제 9단보다 4년 늦은 2012년, 15살 나이로 입단한 그는 아직 국내외 대회에서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커제 9단의 커다란 그림자에 눌려 제대로 기를 펴볼 기회를 얻지 못했던 걸까.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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