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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루엔」 취급자 50%가 "눈침침"|대한 산업 의학회 직업병 세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고도 경제 성장의 그늘 속에 잠재돼 있던 각종 직업병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대한 산업 의학회는 최근 서울 팔레스호텔에서 「산업 의학 세미나」를 가졌다.
세미나에서는 직업병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규제 위주의 단발적 행정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사전 대책이 절실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특히 지금까지 관심권 밖에 있었던 톨루엔·이황화탄소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문제시되고 있는 숱한 직업성 중독들에 대해눈길을 돌려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순천향 의대 이병국 교수 (예방의학)는 『신발 공장 근로자중 유기 용제인 톨루엔을 다루는 사람의 약 5∼10%가 위험 선상에 놓여 있는데도 특수 건강 진단 검사 항목상의 미비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톨루엔 작업자의 자각 증상」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제화 공장 여성 근로자, 비디오 테이프 공장 남자 근로자 등 3백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톨루엔 취급자의 50%가 「눈이 침침하다」는 증상을 호소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두통·어지러움증을 느낀다는 근로자까지 합치면 약 85%가 톨루엔과 관련된 자각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
톨루엔에 만성 중독 되면 신경과 조혈 기능 장애 등이 올 수 있으며 호흡기를 통해 심하게 마실 경우 부정맥을 일으켜 급사할 수도 있다.
이 교수는 톨루엔 취급자의 10%는 이미 소변 속 마뇨산의 농도가 노동부 직업병 인정 기준인 2.4g/ℓ(정상 1.0)를 넘어서고 있다고 밝히고 톨루엔이 몸 안에 흡수돼 일부가 분해, 소변으로 배출되는 마뇨산의 측정을 근로자 건강 진단의 1차 검사 항목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려대 의대 송동빈 교수 (예방의학)는 「인견사 공장의 이황화탄소 중독」 제하의 주제발표에서 모 인견사 공장 방사과 근로자 1백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근로자의 약40%가 다발성 말초신경장애 (근전도기 이용)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0년 이상 근무자는 68%가 신경 장애를 겪고 있으며 청력 장애도 20%에서 나타나고 있는 등 이황화탄소 중독에 따른 심각한 장애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주로 인조견과 셀로판의 생산에 사용되며 사염화탄소·페인트·니스의 제조에도 쓰이는 이황화탄소는 중추신경계에 특히 독성을 나타내 자살 성향을 갖도록 유도하는가 하면 ▲두통·기억 감퇴·망상·환각·피로 등의 임상 증상을 보이고 ▲심장병·뇌혈관질환·고혈압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
부산대 의대 정갑렬 교수 (예방의학)는 납에 노출될 경우 고혈압을 유발시킬 우려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연 폭로가 혈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발표를 통해 납을 취급하는 여성 근로자와 일반직 여성 근로자 3백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변 CPU (코프로포로피린·납 관련 생물학적 지표) 배설량이 납 취급자의 경우 평균 54.7㎍/ℓ로 일반직 (32.5) 보다 약 68%높게 나타나고 혈압도 높아 납 관련 생물학적 지표 4가지와 고혈압의 상관 관계가 입증됐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급성 중독 때 생식 기능 (고환 조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동물 실험에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치료는 어린이들이 납 함유 페인트를 먹었을 경우를 포함해 급성 납중독 때는 신속히 3% 황산소다용액으로 위를 씻어내고 약물 요법을 쓰는 등 각 질환에 따라 대응 요법과 약물 요법을 적용한다는 것.
참석자들은 대기업들이 유해 업무를 중소기업에 하청 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예방대책으로 ▲정부 당국은 직업병이 발견되는 영세 사업장을 무조건 몰아치기보다는 직업병을 숨기지 않고 노출시켜 예방·치료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지원책 등을 강구하고 ▲유기 용제 사업장의 산소 마스크 등 각종 보호 장비 사용 ▲유기 용제 허용 기준을 엄격히 높이고 ▲근로자 정기 검진의 철저한 시행과 검사 항목을 재조정할 것 등을 제시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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