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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CIA’의 예측 … “한국이 미·중 패권경쟁 최대 피해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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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16면

스트래트포의 수석 전략분석가인 로저 베이커는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은 중간에 끼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남북 긴장 완화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스트래트포]

스트래트포의 수석 전략분석가인 로저 베이커는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은 중간에 끼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며 ’남북 긴장 완화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 스트래트포]

‘21세기 노스트라다무스’ ‘민간 중앙정보국(CIA)’ 이란 별명이 따라붙는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 스트래트포(Stratfor)다. 회사 쪽은 ‘지정학 정보회사(geopolitical Intelligence firm)’로 불리길 더 좋아한다.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역사·사회·국제관계 등의 정보를 수집·분석한 뒤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만들어 기업 등에 판매한다. 요즘 국내 기업도 미·중 헤게모니 경쟁에 영향받고 있어 스트래트포 수석 전략분석가인 로저 베이커 부사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베이커는 스트래트포에서 동북아시아 예측을 책임지고 있다.

미국 ‘스트래트포’ 베이커 부사장 #미·중 헤게모니 잡기 위한 경쟁 #트럼프·시진핑 대화로 해결 안돼 #일본은 한걸음 떨어져 관망하다 #중국 견제 위해 군비 강화 나서 #경제 건설에 초점 맞춘 북 김정은 #트럼프의 참을성 한계 넘지 않아

남북 긴장 고조될수록 미·중에 더 휘둘려

설립자인 조지 프리드먼 때문에 스트래트포를 알게 됐다. 한국에서 프리드먼은 세계 최고 미래 예측가로 알려져 있다.
“현재 그는 스트래트포를 직접 경영하지는 않는다. 다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프리드먼은 2014년 서울을 방문해 ‘북한이 곧 무너진다’고 예측했다. 스트래트포도 설립자인 그의 예측에 동의하는가.
“아니다. 스트래트포는 프리드먼과 다르게 예측하고 있다. 북한 리더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드먼은 왜 북한 붕괴를 예측했을까.
“최근까지 서방 전문가들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를 보는 눈으로 북한을 봤다. 북한 권력자의 리더십과 권력 구조가 동유럽 국가들과 비슷하다는 시각을 공유했다. 동유럽 리더들이 한순간에 몰락했듯이 북한도 그럴 것으로 봤다. 하지만 북한은 동유럽 국가와는 달리 조선 등 전통적인 왕조체제와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무슨 말인가.
“김정은 등 북한 리더들이 조선시대 왕들처럼 레짐(체제) 유지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상황 변화에 놀랍도록 적응할 줄 안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아주 유연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북한은 완강하게 미국에 맞서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지도자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등 서방 리더들의 참을성(risk tolerance)이 얼마나 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지난해까지 트럼프를 거칠게 비판했다. 의도적인 공격이다. 그때 그는 트럼프가 갖고 있는 참을성의 한계를 결코 넘지 않았다. 또 북한 리더들은 자국내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변신해왔다.”
북한은 거의 변하지 않는 나라로 보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한국전쟁 이후 경제 건설을 중시했다. 반면 김정일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겪은 고난의 행군 시대에 군을 앞세워 위기를 돌파했다. 지금 김정은은 경제 건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면에서 김정은이 할아버지와 닮은 꼴이다.”
그래서 남북, 북미 대화를 시작한 듯하다. 자! 이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예측을 해줄 수 있는가.
“지금까지 핵 개발국 가운데 핵무기를 포기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우크라이나 등이 옛 소련 붕괴 이후 예외적으로 핵무기를 러시아 등으로 이관했다. 나는 북한의 핵 지위는 파키스탄과 비슷할 것으로 본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이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 상태다.”

스트래트포는 올 9월18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9월9일 내놓은 4분기 예측 보고서에서 “북·미 비핵화 대화가 10~12월 사이에 전척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이 예측은 현재까지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또 스트래트포는 미·중 무역회담이 지지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북 비핵화 어려워 파키스탄처럼 될 것

트럼프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다. 이 회담을 계기로 무역전쟁이 좀 진정될까.
“지금 미·중 갈등은 단순한 무역분쟁이 아니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나 무역적자를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헤게모니 경쟁이다.”
왜 그럴까.
“중국은 19세기 후반까지 사실상 자립경제 구조였다. 외국과 교역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교역하지 않으면 안되는 국가가 아니었다. 반면, 현재 중국은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고 상품을 해외 시장에 팔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다. 해외 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갈등은 미국과 캐나다나 미국과 멕시코가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줄다리기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중의 시장 쟁탈전이 불가피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 중국은 생존을 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헤게모니를 쥐려고 한다. 이런 중국을 미국은 견제하고 막아야 한다. 두 나라 경쟁과 갈등이 오랜 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아태지역이 미·중 각축장이 되는 것인가.
“미·중 대결이 장기화하면 아태지역 국가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일본은 이미 노선을 결정했다.”
일본은 어떤 길을 선택했는가.
“미국 전문가들의 눈에 일본은 최근까지 관망 국가로 비쳤다. (미·소 냉전시대 이후) 일본은 한 걸음 떨어져 관망하다 경제적 이익을 챙겨왔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관망하는 나라가 아니다. 행동에 나섰다. 일본 정치 리더들은 자국을 ‘중국을 견제하는 나라’로 재정의하고 군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내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나라별 성향을 분류했다. ▶친미 국가에서 친중으로 돌아서는 나라 ▶친미 국가로 중국 견제에 동참하는 나라 ▶등거리 외교를 하는 나라 등이다. 한국은 친미 국가로, 북한은 등거리 외교국으로 분류됐다(그래픽 참조).

미·중 경쟁 구조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될 것으로 예측하는가.
“아태지역 국가들은 미·중 경쟁 구조 속에서 이익을 보는 나라와 어려움에 처할 나라로 나뉜다. 한국은 가장 큰 어려움에 처할 나라 가운데 하나다. 미·중 사이에 끼어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한국인들은 국가목표 등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기존 정치·외교 노선과는 다른 길을 찾아 국민적 합의를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야 내야 한다. 그리고 남북한 긴장이 고조될수록 미·중 두 나라에 더 휘둘린다.”
무슨 뜻인가.
“남북 긴장이 고조될수록 남한은 미국에, 북한은 중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 된다. 반면, 긴장을 완화하면 남북한 모두 미·중 사이에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당장 통일을 해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군사적 갈등 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스트래트포

예측 전문가 조지 프리드먼이 1996년 텍사스 오스틴에 세운 지정학적 정보 플랫폼이다. 유보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분명한 예측으로 의사결정권자의 결단을 돕는다는 게 스트래트포의 기본 원칙이다. 미군 특수전 사령부의 지휘관 출신인 브레트 보이드 등을 분석가로 보유하고 있다. 중앙SUNDAY가 인터뷰한 로저 베이커는 미국의 최초 사립 군사학교로 시작한 노리치대학에서 전쟁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역사와 군사, 경제 등의 변수를 바탕으로 한반도와 중국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 1990년대 한국에서 대기업 임원 등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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