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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엔 단풍, 물가엔 왕버들…눈부신 늦가을 우포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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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10월 25일 한국의 4개 도시가 ‘람사르 습지도시’로 인정받았다. 강원도 인제군, 경남 창녕군, 전남 순천시, 제주시. 이중 늦가을의 그윽한 풍경을 자랑하는 창녕을 다녀왔다. 드넓은 우포늪을 구석구석 쏘다니며 이 계절에만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을 채집했다. 아직 단풍이 화려했고, 겨울 진객(珍客) 큰고니와 기러기 떼가 나는 장관도 펼쳐졌다. 내년 봄 방사를 앞둔 따오기도 봤다. 우포의 봄날이 또 기대됐다.

람사르 습지도시 경남 창녕 #8.4㎞ 생명길 걸으며 계절 만끽 #인적 드문 목포·사지포도 매력적 #큰고니·큰기러기 … 철새 군무 장관 #복원 성공한 따오기 내년 방사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이른 아침 화려한 가을을 만났다. 환경감시원인 주영학씨가 쪽배를 몰고 습지 안쪽으로 들어가는 찰나, 먹구름 사이로 햇볕이 내리쳤다. 최승표 기자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이른 아침 화려한 가을을 만났다. 환경감시원인 주영학씨가 쪽배를 몰고 습지 안쪽으로 들어가는 찰나, 먹구름 사이로 햇볕이 내리쳤다. 최승표 기자

농지 될 뻔했던 1억 년 묵은 습지

우포늪은 크다. ‘한국 최대의 내륙 습지로 면적이 약 2.31㎢에 달한다’는 설명만으로는 가늠하기 어렵다. 우포늪은 늪 하나를 이르지 않는다. 창녕군의 3개 면과 6개 리(유어면 대대리‧세진리, 이방면 안리‧옥천리, 대합면 소야리‧주매리)에 걸친 4개 습지를 일컫는다. 큰형 격인 우포가 목포‧사지포‧쪽지벌을 아우처럼 거느리고 있다.

따오기복원센터에서 굽어본 우포늪. 늪 테두리를 왕버들이 노랗게 물들이고 있고, 논습지에는 푸릇푸릇한 밀 싹이 올라왔다. 최승표 기자

따오기복원센터에서 굽어본 우포늪. 늪 테두리를 왕버들이 노랗게 물들이고 있고, 논습지에는 푸릇푸릇한 밀 싹이 올라왔다. 최승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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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우포늪 남쪽 입구로 들어섰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오후, 탐방로는 한산했다. 큰기러기와 청둥오리가 지저귀는 소리만이 안개 자욱한 습지를 메웠다. 우포를 한 바퀴 도는 우포늪생명길(8.4㎞)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대대제방에 올라 우포를 굽어봤다. 늪 전체가 초록빛인 여름과 달리 흑(黑) 아니면 백(白)인 수묵화 한 폭이 펼쳐졌다. 이따금 새 떼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올라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고 알려줬다.

사지포제방 위쪽 언덕에 있는 사랑나무.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팽나무다. 최승표 기자

사지포제방 위쪽 언덕에 있는 사랑나무.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팽나무다. 최승표 기자

대대제방을 지나 하트 모양의 ‘사랑나무’가 우뚝 선 언덕에 닿았다. 마침 비가 그쳤고, 대대제방보다 조금 더 높은 언덕이어서 시야가 확 트였다. 성득용 창녕군 문화관광해설사가 손가락으로 사방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1억4000만 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포는 원래 하나의 습지였습니다. 일제가 제방을 쌓고 곳곳에 논을 만들면서 4개로 쪼개졌죠. 쌀농사에 열을 올리던 1960~70년대에도 습지를 메우려다 포기했습니다. 자칫했으면 우린 우포를 잃을 뻔했죠.”

물웅덩이에 왕버드나무가 반영된 모습이 신비한 ‘비밀의 정원’. 우포 서쪽에 있다. 최승표 기자

물웅덩이에 왕버드나무가 반영된 모습이 신비한 ‘비밀의 정원’. 우포 서쪽에 있다. 최승표 기자

드넓은 우포도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었다. 가장 눈부신 건 왕버들이었다. 늪 테두리를 장식한 왕버드나무 이파리가 초여름 신록처럼 연둣빛을 띠었다. 왕버들이 가장 빼곡한 우포 서쪽으로 이동했다. 성 해설사가 ‘비밀의 정원’이라고 안내한 곳이다.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토평천 주변에 아름드리 왕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처럼 이끼 잔뜩 낀 나무가 신비한 기운을 내뿜었다. 한국 토종인 왕버들은 꾸준히 자생 면적이 늘고 있다. 한데 습지 환경에 좋은 건 아니란다. 우포늪 ‘육화(陸化)’의 주범이 다름 아닌 왕버들이어서다. 아름다운 자연의 아이러니다.

겨울 철새들 속속 상륙

우포 북서쪽에 있는 목포는 사진 동호회 사이에서 인기다. 물안개 피는 풍경과 이른 아침 배 모는 마을 주민을 만날 수 있어서다. 9일 오전 6시 30분 우포늪 환경감시원 주영학(71)씨가 여명을 헤치고 목포제방에 나타났다. 약 20년간 환경 감시원으로 활동해온 주씨가 제방에 내려가 덫에 걸린 뉴트리아(생태계 교란종 외래 동물)를 들어보였다. “허허, 올해만 열다섯마리째임더.”

우포늪에서는 예부터 '이마배'라는 쪽배를 탔다. 물이 깊지 않아 긴 대나무로 바닥을 밀며 앞으로 나간다. 최승표 기자

우포늪에서는 예부터 '이마배'라는 쪽배를 탔다. 물이 깊지 않아 긴 대나무로 바닥을 밀며 앞으로 나간다. 최승표 기자

현재 우포에서 어업 허가를 받은 사람은 단 열 명. 그러나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어업 활동을 할 수 없다. 겨울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신 창녕군은 주민들에게 현금으로 보전해준다. 그러니까 시방 우포에서 겨울에 배를 모는 사람은 주씨 혼자뿐이다.
먼 산 너머로 해가 밝았다. 구름 뚫고 쏟아진 강렬한 햇볕, 눈부신 단풍과 갈대, 잔잔한 물에 뜬 쪽배 한 척이 완벽한 풍경화를 빚어냈다. 뭍으로 나온 주씨가 “러시아‧몽골이 덜 추워서인지 철새 도래가 예년보다 늦다”며 “그래도 큰고니 300마리, 노랑부리저어새 10여 마리, 큰기러기 1200마리가 왔다”고 말했다.

인적 뜸한 사지포에서 겨울 철새 큰고니 떼를 만났다. '고니 떼의 힘찬 비상'이라고 말할 순 없다. 워낙 민감한 새들이어서 사람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최승표 기자

인적 뜸한 사지포에서 겨울 철새 큰고니 떼를 만났다. '고니 떼의 힘찬 비상'이라고 말할 순 없다. 워낙 민감한 새들이어서 사람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최승표 기자

사지포에서 만난 겨울 철새들. 오른쪽 세 마리가 노랑부리저어새, 왼쪽 일곱 마리가 큰고니다. 주변에 기러기, 오리도 많다. 최승표 기자

사지포에서 만난 겨울 철새들. 오른쪽 세 마리가 노랑부리저어새, 왼쪽 일곱 마리가 큰고니다. 주변에 기러기, 오리도 많다. 최승표 기자

인적 뜸한 사지포로 향했다. 주씨 말마따나 온갖 겨울 철새가 모여 있었다. 새들은 먹이를 쪼아먹거나 그루밍(몸을 치장하는 행위)을 하느라 바빴다. 새들이 같은 종끼리 무리 지어 비상하는 모습을 숨죽이고 바라봤다.
우포는 새의 낙원이지만, 지금 가장 주목받는 새는 따오기다. 토종 따오기는 79년 DMZ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뒤 종적을 감췄다. 다행히도 2008년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선물한 따오기 2마리를 우포늪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복원해 현재 363마리까지 개체 수가 늘었다. 올봄 40여 마리를 방사할 계획이었으나 내년으로 미뤘다.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하려 했지만, 별안간 남북정상회담이 열려서였다.

우포늪 따오기복원센터에 사는 따오기. 새빨간 눈 주변 피부와 긴부리 끝부분이 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최승표 기자

우포늪 따오기복원센터에 사는 따오기. 새빨간 눈 주변 피부와 긴부리 끝부분이 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최승표 기자

창녕군은 어렵게 복원에 성공한 따오기를 도시의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김성진 우포늪관리사업소 박사는 “중국·일본의 주요 서식지보다 우포가 따오기에게 더 좋은 환경”이라며 “내년 봄이면 따오기가 ‘따옥따옥’ 울며 붉은 날개 펼치고 비상하는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영학씨가 어릴 적 우포에서 ‘빨간 새’ 나는 걸 일상적으로 봤다는 바로 그 장면일 터이다.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자연 적응 훈련 중인 따오기. 비상할 때 보이는 연한 주홍빛 날개가 매력적이다. 최승표 기자

따오기복원센터에서 자연 적응 훈련 중인 따오기. 비상할 때 보이는 연한 주홍빛 날개가 매력적이다. 최승표 기자

여행정보

서울시청에서 경남 창녕 우포늪까지는 325㎞, 자동차로 약 4시간 거리다. 우포늪 탐방은 무료이지만, 우포늪 생태관은 입장료가 있다.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자전거도 빌릴 수 있다. 2시간 1인용 3000원, 2인용 4000원. 따오기복원센터 관람 신청은 창녕군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관람 프로그램은 하루 4번,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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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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