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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자본잠식 피하려다 중징계…논란 끝에 드러난 삼성바이오 회계 분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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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 "삼성바이오 고의적인 분식회계" 최종 결론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재무제표를 거짓으로 꾸밈) 논란이 마침표를 찍었다. 금융감독원이 조사를 시작한 지 1년 7개월 만이다. 14일 증권선물위원회의 최종 판단 결과는 고의적인 분식회계였다. 설립 이래 4년째 적자였던 삼성바이오가 2015년 1조9000억원대 당기순이익 흑자를 인식한 것은 고의적으로 이익을 부풀렸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당시 삼성바이오가 1조8000억원대 부채 인식으로 자본금이 바닥나(자본잠식) 주식시장 상장이 좌절되는 상황을 모면하고자, 회계 기준 위반 소지가 있는 대안들을 모의한 내부 문건이 이번 사건의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아들 재산 신고가 잘못되면 가족 전체 재산 신고도 잘못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증선위 결론은 삼성바이오의 모회사 삼성물산에 대한 분식회계 혐의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회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연합뉴스]

작년 2월 시민단체 의혹 제기…시장서도 꾸준히 의심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2월이었다. 당시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참여연대는 삼성바이오가 2015년 갑작스럽게 당기순이익이 급증한 것을 놓고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했다. 회계 전문가들은 제기된 의혹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좀 이상해 보여도 합법적인 회계처리"란 의견이 대다수였다. 금감원이 그해 4월 분식회계 혐의 조사에 착수하고 1년여 동안 결론을 내지 못한 것도 감독당국 내부에 이 같은 의견이 '다수설'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돈이 없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두툼해진 지갑을 꺼내 들면 어디서 돈을 훔친 건 아닌지 의심하듯, 시장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 의혹은 꾸준히 제기됐다. 시장에 내다 팔만한 의약품도 개발되지 않아 적자가 뻔한 마당에 2조원에 가까운 순이익 인식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있었던 것이다.

삼성바이오, 종속회사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꾸자 순이익 폭증  

삼성바이오가 이처럼 순이익이 폭증한 것은 이 회사가 투자한 계열회사 주식 가치가 올랐기 때문이다. 2012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과 3300억원을 합작 투자해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란 회사를 세웠다. 당초 삼성바이오가 85% 지분을 보유한 에피스 주식의 가치도 290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5년에 와서 에피스 지분의 시장가격(공정가치)은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됐고, 이 가치가 삼성바이오의 회계장부에 반영되면서 순이익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삼성바이오가 에피스 지분 가치를 시장가격 4조8000억원에 다시 회계장부에 반영할 수 있게 된 건 삼성 측이 애당초 '종속회사'로 분류했던 에피스를 2015년부터 '관계회사'로 바꾸면서다. 처음엔 에피스 지분 대부분은 삼성 측이 보유하고 있었고 이사회도 삼성 측이 장악하고 있어 종속회사로 봤다. 하지만 그해 9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합병 법인(삼성물산) 재무제표 작성 과정에서 에피스의 시장가치가 4조8000억원에 달한다는 회계법인 분석 결과를 확인한 뒤부터는 합작 투자자인 미국 바이오젠이 에피스의 공동경영권(콜옵션)을 행사할 실익이 커졌다고 봤다. 바이오젠은 합작 투자 계약대로 3500억원만 지불하면 시가 5조원에 육박하는 에피스 지분을 거의 절반(50%-1)까지 보유할 수 있고 이사회도 반반씩 구성해 공동 경영을 선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삼성 측은 이때부터 에피스를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분류했다. 바이오젠이 실제로 공동 경영을 선언한 건 올해 6월이지만, 국제회계기준(IFRS) 상 공동 경영의 실익이 더 크면 이를 선언한 것으로 보고 회계처리하게 돼 있다. 이렇게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바꾸면 삼성바이오는 에피스 주식 가치를 취득가격이 아니라 시장가격에 따라 반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삼성바이오2 [중앙일보DB]

삼성바이오2 [중앙일보DB]

금감원 "관계사 전환은 순익 부풀리기"…1년만에 감리 결과 발표 

금감원은 이 과정에서 분식이 일어났다고 봤다.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뒤바꾼 건 순이익을 부풀리려는 의도에서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이후 제일모직 주주들에 유리하게 산정된 합병 비율을 정당화하기 위해, 당시 제일모직 자회사였던 삼성바이오 가치를 '뻥튀기'했다는 주장이었다. 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유리할수록, 모직 지분이 많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는 더 유리했다. 또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경영권을 행사하면, 삼성 입장에선 85%로 보유했던 에피스 지분 가치 중 절반만 남겨두고 바이오젠에 넘겨줘야 한다. 그만큼 빚을 갚은 것처럼 자산이 빠져나가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회계상 '부채(콜옵션 부채)'로 평가해 공시해야 했지만, 이를 누락한 점도 지적했다. 금감원은 지난 5월 이런 내용을 들어 '고의적인 분식회계'로 결론짓고 분식 여부를 판단하는 감리위원회와 증선위에 안건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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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그땐 옳고, 지금은 틀린가?" 반발 

삼성바이오는 이에 즉각 반발했다. 금감원은 물론 회계기준원에 지난해 1월 관련 사안을 문의한 결과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답변해놓고, 이제와서 분식회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행정의 일관성이 없다는 게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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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증선위 "공시 누락만 고의, 순이익 부풀리기는 재조사 요청" 

증선위는 올해 7월 수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삼성바이오는 콜옵션 부채 공시를 누락한 부분만 고의성이 입증된다는 결정이었다. '순이익 뻥튀기' 목적에서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했다는 의혹은 금감원에 다시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금감원은 증선위 논의 과정에서 삼성바이오가 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전환한 점만 문제 삼았을 뿐, 전환하기 전·후엔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맞는지 '모법답안'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이 7월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증권선물위원회 긴급 브리핑을 마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증선위는 이날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를 공시 위반에 대해서만 '고의 분식'을 인정했다. [뉴시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이 7월 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증권선물위원회 긴급 브리핑을 마친 후 청사를 나서고 있다. 증선위는 이날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혐의를 공시 위반에 대해서만 '고의 분식'을 인정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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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삼바 내부 문건 입수해 '스모킹 건' 포착 

금감원은 재조사 과정에서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삼성바이오가 작성한 내부 문건을 입수하게 됐다. 이 문건엔 삼성 측이 회계 결산 직전이던 2015년 11월, 1조8000억원 규모 부채(콜옵션 부채) 인식으로 자본잠식에 빠지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세 가지 검토안이 나와 있다. 에피스 지분 가치가 5조원 규모로 평가됐으니,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경영권을 행사해 약속한 지분 41%를 넘겨주면 삼성 측이 회계장부에 인식해야 하는 콜옵션 부채는 1조8000억원 규모가 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부채 누적으로 자본잠식에 빠져 주식시장 상장도 불가능해진다.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전환해 대규모 순이익을 인식하는 방안은 이를 모면하기 위한 세 가지 검토안 중 하나로 제시됐다. 이는 삼성 측이 그동안 열린 증선위에서 소명한 것과는 다른 내용이었다. 삼성 측은 "에피스가 개발 중인 복제약 제품의 유럽·한국 판매 승인이 일어나는 등 미래 성장성에 긍정적인 이벤트가 발생하면서 기업가치가 커졌고, 이에 바이오젠이 공공경영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져 관계회사로 전환했다"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금감원이 제시한 '내부 문건'에는 자본잠식을 피하려는 의도에서 진행된 것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은 증선위가 고의적 분식회계로 최종 결론 내리는 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증선위 분식회계 결정, 행정소송서 다툴 여지도 

다만 이번 증선위로 그동안의 논란이 마무리될지는 미지수다. 금감원이 내부 자료를 입수해 삼성 측의 분식 의도를 찾은 건 사실이다. 증선위도 삼성과 바이오젠 측이 맺은 합작 계약에 나온 약품 판권과 경영참여 권한 등을 분석한 결과 "애당초 에피스는 삼성바이오의 관계회사였다"는 금감원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바이오젠이 약품 판매와 경영에 동등한 의사를 개진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피스의 약품 판매에 대한 종합적 판단은 삼성 측이 수행하고 바이오젠의 경영참여 권한은 단순한 동의권에 불과하기 때문에 에피스는 애당초 삼성이 장악한 종속기업이란 삼성 측 논거도 만만찮다. 이는 현재 삼성바이오가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다투게 될 전망이다.

삼바 내부문건 미전실 전달…증선위 "삼성물산 감리, 검토" 

회계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모회사 삼성물산에 대한 분식회계 조사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분식회계 모의는 삼성물산 합병 이후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합병 비율 산정엔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자회사의 재무제표에 오류가 생기면 모회사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용범 증권선물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증선위 직후 간담회에서 "삼성바이오 재무제표에서 분식회계가 일어난 부분을 수정하면, 삼성물산 재무제표도 수정돼야 한다"며 "이런 내용을 면밀히 분석해 삼성물산 감리 여부도 별도로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증선위 고발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의 분식회계 관여 여부에 대한 수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금감원이 확보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이 이메일을 통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로 전달된 정황도 포착됐기 때문이다. 다만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의 대주주이지만, 등기임원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적인 회계 관리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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