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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9조원 분식회계 의혹, 삼성바이오로직스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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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015년 설립 5년 차의 삼성바이오로직스는 4년 연속 당기순이익 적자를 벗어나 단숨에 1조9000억원의 흑자를 올렸다. 2012년 미국 바이오젠과 3300억원을 합작 투자해 세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시장 가격(공정가액)이 4조8000억원으로 평가됐고, 이 가치가 회계장부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종속회사’였던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관계회사’로 바뀌면서 이 회사에 대한 투자 가치를 시장 가격으로 환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대다수 회계 전문가들은 “이상해 보여도 절차는 합법적”이라고 봤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이 과정을 의심하고 있다. 대규모 이익을 냈다는 2015년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있던 해와 겹쳐 만약 분식회계로 결론이 나면, 적지 않은 파장이 일 전망이다.

금감원, 종속회사 가치 부풀리기 의심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바꾼 뒤 #4년째 적자 회사가 대규모 흑자로 #전문가들 “애초 종속 아닌 관계회사” #회사 측 “합법 전환, 이익 안 부풀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주목

28일 금융당국과 제약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삼성바이오에피스 지분 가치 처리 문제를 분식회계 혐의의 핵심 쟁점으로 결정했다.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 소속 전문가 의견도 수집했다. 이들 대다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회계 규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회계학계 권위자 최종학 서울대 교수팀 등을 앞세워 방어에 나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번 조사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조사 결과가 법정 다툼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 산정의 적법성 판단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합병법인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면 보유 지분이 많은 제일모직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되는 게 유리했다. 당시 제일모직 기업가치가 고평가됐다는 의견을 제기한 일부 증권사에선 “제일모직 자회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성은 2018년 이후에나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참여연대 등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합병 전후에 미리 이익을 부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삼성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설립 직후부터 2014년까지 종속회사로 처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85% 지분을 갖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영업·인사 등 경영의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15% 지분을 가진 미국 바이오젠은 지분을 절반까지 늘려 공동 경영을 주장할 권리(콜옵션)가 있었지만, 이 권리는 행사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자선 사업가가 아닌 이상 적자가 뻔한 초기 바이오기업 지분을 굳이 절반으로 늘려 손실을 감당할 이유는 없다고 본 것이다.

2015년 이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신약이 유럽 승인을 받은 뒤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했다. 돈 벌 구석이 생기면서 바이오젠도 지분을 절반까지 늘려 공동 경영을 주장할 가능성도 커졌다고 봤다. 바이오젠의 목소리가 커진 이때부터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종속회사가 아니라 그저 지분 절반만큼만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관계회사로 봐야 한다는 게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최 교수팀 주장이다. 종속회사가 관계회사로 바뀌면 처음 지분을 샀을 때 가격(취득가액)이 아니라 4조8000억원의 시장 가치로 재평가한 가격을 회계장부에 다시 반영할 수 있다. 헐값에 산 골동품이 뜻밖의 가격의 ‘진품명품’이 돼 재무제표에 기록된 것이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 설립 초기 종속회사로 회계처리한 것은 문제 소지가 있다고 봤다. 바이오젠은 처음부터 지분을 늘려 공동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관계회사였다는 회계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들었다.

금감원 문제 제기대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처음부터 관계회사였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15년 1조90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부풀린 분식회계를 한 게 된다.

박동흠 현대회계법인 회계사는 “회계 규정상 종속회사가 관계회사로 전환하는 등 지배구조가 바뀔 때만 시장 가격으로 재평가된 기업가치를 반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전망과 달리 금융당국은 이번 조사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김상원 금감원 회계조사국장은 “조사 중인 사안은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제일모직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주식가격으로 구하는 것이므로 이번 조사와는 관련이 없다”고 언급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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