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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에 120만 난민이 몰려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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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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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바자르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 처음 들어갈 때는 그곳이 시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초입부터 1㎞ 남짓한 도로 양편에 자그마한 상점이 끝없이 늘어섰기 때문이다.

[로힝야 난민촌 현지 르포] 1회 #1인 소득 1600달러 극심한 가난 #인구 12만 지역에 120만 난민 몰려 #미얀마에서 추방 무슬림 로힝야족 #ICRC 등 자원봉사자와 공동 구호 #국제시장 서고 학교선 글 읽는 소리 #“구호보다 명예롭게 귀향” 목소리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에서 만난 남자 어린이.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의 로힝야 난민촌에서 만난 남자 어린이. [우상조 기자]

동행한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직원 오마르 샤리프는 “난민들이 자체적으로 세워서 운영하는 가게들”이라며 “ICRC나 국제난민기구(UNHCR) 등 국제구호단체에서 무상 지급하는 구호품 이외에 필요한 기호품 등을 시장에서 거래한다"고 설명했다.

로힝야 난민촌에 들어선 '국제시장'. 수백 개의 점포가 빼곡하게 들어었다. [채인택 기자]

로힝야 난민촌에 들어선 '국제시장'. 수백 개의 점포가 빼곡하게 들어었다. [채인택 기자]

난민촌에 '국제시장'이 섰다 

도저히 난민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가게가 있었다. 갖가지 채소·과일·향신료를 파는 신선식품 가게는 물론 할랄식으로 도축한 양·염소·닭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파는 푸줏간도 여럿 보였다. 하나씩 따먹을 수 있게 줄줄이 포장한 과자를 입구에 주렁주렁 걸어놓고 뒤에선 물을 끓여 차를 타주는 ‘찻집’도 성업 중이었다.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집은 대나무와 방수포로 지은 가설 주택이다. [우상조 기자]

로힝야 난민촌의 모습. 집은 대나무와 방수포로 지은 가설 주택이다. [우상조 기자]

특히 눈에 띈 것이 10여 개나 되는 약국이었다. 가게 벽과 입구엔 해열진통제·소화제·피부연고제 등 기본의약품과 비타민과 미네랄이 든 어린이 영양제는 물론 알로에 등 건강식품까지 깔끔하게 포장된 제품을 빼곡하게 진열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 적신월사 자원봉사자(왼쪽)가 로힝야 난민에게 국제적십자회(ICRC)가 제공한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적신월사 자원봉사자(왼쪽)가 로힝야 난민에게 국제적십자회(ICRC)가 제공한 구호물자를 나눠주고 있다. [우상조 기자]

국제기구와 자원봉사자들이 난민 거처 지어

가게 사이에 난 작은 길을 따라 들어갔더니 ‘가설 주택’이 줄이어 들어선 생활공간이 보였다. 가설 주택은 대나무를 엮어 뼈대를 만들고 방수천으로 벽과 지붕을 막은 형태였다. 현지 ICRC 직원인 무함마드 잠쉐는 “재료는 ICRC·UNHCR 등 국제기구에서 지원하고 방글라데시 적신월사(이슬람국가의 적십자사에 해당) 자원봉사자들이 밤낮으로 작업해서 지은 집들”이라고 설명했다.

방글라데시의 전형적인 탓집. 현지인들은 '티 하우스'로 부른다. 주인이 타준 차를 마시면서 가게에 주렁주렁 걸린 과자를 골라서 먹으면 방글라데시인의 '티 타임'이 된다. 로힝야 난민촌에도 이런 가게가 보였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의 전형적인 탓집. 현지인들은 '티 하우스'로 부른다. 주인이 타준 차를 마시면서 가게에 주렁주렁 걸린 과자를 골라서 먹으면 방글라데시인의 '티 타임'이 된다. 로힝야 난민촌에도 이런 가게가 보였다. [우상조 기자]

양다리가 없는 장애인 난민이 사는 집을 방문했더니 지붕 위에 태양열 발전기가 보였다. 그 난민은 “죽기 살기로 무릎으로 기어서 국경을 넘어왔다”며 “난민촌에서 의식주는 구호로 해결하고 아내가 장사해서 모은 돈으로 휴대전화를 충전할 태양열 발전기를 샀다”라고 말했다.

난민도 배워야 한다. 로힝야 난민촌의 마스지드에서 학생들이 코란을 공부하고 있다. 마스지드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학교가 붙은 시설을 가리킨다. [우상조 기자]

난민도 배워야 한다. 로힝야 난민촌의 마스지드에서 학생들이 코란을 공부하고 있다. 마스지드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에 학교가 붙은 시설을 가리킨다. [우상조 기자]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찾아가봤더니 마스지드(모스크와 부속 학교가 함께 있는 시설)에서 초등학생들이 쿠란을 읽고 있었다. 교사 마무드는 “이를 통해 아랍어와 종교·사회 생활을 배운다”라고 말했다. 국제어인 영어도 매일 1시간씩 공부하고 귀환할 때를 대비해 미얀마어도 익힌다.

양 다리가 없는 로힝야 난민, 무릎으로 기어서 국경을 넘어왔다고 한다. 난민촌에서 그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제공한 의족을 차고 스스로 겋어다니고 있다. [채인택 기자]

양 다리가 없는 로힝야 난민, 무릎으로 기어서 국경을 넘어왔다고 한다. 난민촌에서 그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제공한 의족을 차고 스스로 겋어다니고 있다. [채인택 기자]

전기도 인프라도 부족한 방글라데시  

12만 명이 살던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지역에는 국경을 맞댄 불교 국가 미얀마의 라카인 주에서 쫓겨난 무슬림 로힝야 난민이 현재 120만 명 이상이 머물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2017년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명목금액 기준 1602달러(세계 147위)인 가난한 나라다.
ICRC 다카 사무소의 월터 진티 부소장은 "난민도 힘들게 국경을 넘었지만, 부유하지 않은 나라에 이런 대규모 난민이 몰려왔으니 현지 주민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며 "난민과 주민을 모두 지원하는 것이 국제구호기구의 임무"라고 말했다.

난민들이 원하는 건 명예로운 귀향 

로힝야 난민촌에는 어린이가 많았다.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우상조 기자]

로힝야 난민촌에는 어린이가 많았다.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들의 모습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우상조 기자]

구호물자 분배처에도 찾아가봤다. 쌀·콩·식용유 등 식량과 치약·칫솔·비누·수건 등 위생세트를 나눠주고 있었다. 한 난민은 “쌀과 콩만 주지 말고 함께 먹을 고기와 채소도 줘야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구호단체들은 보간을 잘못 했다가 상할 우려가 있는 육류나 해산물, 채소는 공급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구호에는 과학과 노하우가 필요한 셈이다.

구호 단체로부터 식량을 배급 받아 가설 주택으로 돌아가는 로힝야 난민들. 이들은 구호를 늘리는 것보다 한시바삐 고향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우상조 기자]

구호 단체로부터 식량을 배급 받아 가설 주택으로 돌아가는 로힝야 난민들. 이들은 구호를 늘리는 것보다 한시바삐 고향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우상조 기자]

난민촌 리더 역할을 하는 마무드(43)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보다 나은 구호가 아니라 명예롭게 고향으로 귀환하는 것”이라며 “힘없는 우리를 대신해 국제사회가 나서서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변에선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었다. 이들이 한시바삐 고향으로 가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다카·콕스바자르·치타공(방글라데시)=채인택 국제전문기자, 사진=우상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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