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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난민촌에서 '기업가 정신' 꽃피우는 로힝야 난민들…난민 경제권 형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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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동남부 도시 콕스바자르 주변 여러 곳에 분산된 로힝야 난민촌의 가설 주택을 방문할 때마다 느낀 점이 방안이 지나치게 어둡다는 점이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 사는 난민들은 전등 등 전기가 필요한 모든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수 없다. 밤에는 그야말로 암흑천지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공보관인 오마르 샤리프는 “여자나 아이들은 안전을 우려해 밤에는 가설 주택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라고 했다. 샤리프는 “이런 상황을 우려해 해결 방안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로힝야 난민촌 현지 르포] 2회 #전기도 없는 난민촌에서도 #거대상권 형성하며 유통업 #현지인과 물물 교환하며 #기기묘묘하게 물자 확보 #로힝야족 강인한 생존력 #지금은 난민 생활 어렵지만 #강한 자존감 바탕 귀환 기대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의 찻집. 현지인들이 티샵으로 부르며 과자와 차를 파는 가게로 로힝야 난민이 난민촌 안에 자력으로 차리고 영업 중이다. 앞에는 돈을 모아 마련한 소형 태양광 발전기가 달려 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의 찻집. 현지인들이 티샵으로 부르며 과자와 차를 파는 가게로 로힝야 난민이 난민촌 안에 자력으로 차리고 영업 중이다. 앞에는 돈을 모아 마련한 소형 태양광 발전기가 달려 있다. 우상조 기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난민촌

이유는 간단하다. 방글라데시 당국은 난민촌에 전기를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라카인주에 주로 살던 로힝야족이 박해를 피해 국경을 넘어오자 일시적으로 머문다고 해서 받아들였을 뿐이므로 이들에게 거주민을 위한 전력 공급 시설을 설치해줄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난민이 장기적으로 머물거나 아예 정착하려고 할까 봐 인프라 설치를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로힝야 난민촌의 즐비한 가게들'. 난민들이 나름의 유통 능력과 상술로 거대한 '국제시장'을 만들었다. 채인택 기자

로힝야 난민촌의 즐비한 가게들'. 난민들이 나름의 유통 능력과 상술로 거대한 '국제시장'을 만들었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전기 부족해 인도에서 구매

거기에 방글라데시의 전력 공급이 충분하지 못한 면도 있다. 방글라데시 전력개발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발전 용량은 1만6000 메가와트이며 전력 부족으로 전체 공급 전력의 4.1%를 이웃 인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전국 전력 공급률은 90%로 전체의 10%가 아직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무전력촌’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경 근처 농촌 마을에 갑자기 들어선 로힝야 난민촌에 전기를 공급해줄 도리가 없는 것이 방글라데시의 말 못할 사정이다. 콕스 바자르 도심에 머무는 동안 수시로 정전이 발생하는 거로 봐서 전력 공급의 안정성도 문제로 보인다. 대도시가 아닌 중소 도시나 농촌의 경우에는 도로에 가로등도 제대로 없었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로힝야 난민이 모래와 시멘트가 섞힌 포대로 진탕길을 포장 보도로 만들고 있다. 난민들은 이런 일을 통해 받은 임금도 난민경제의 한 축이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로힝야 난민이 모래와 시멘트가 섞힌 포대로 진탕길을 포장 보도로 만들고 있다. 난민들은 이런 일을 통해 받은 임금도 난민경제의 한 축이다. 우상조 기자

원전 건설로 전력난 해소 기대

방글라데시가 전력난 해소를 위해 집어든 카드는 원전이다. 방글라데시는 독립 직후인 1974년부터 소련으로부터 원자력 발전소를 들여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술력과 경제력 등 다양한 문제로 미뤄지다가 2009년 러시아와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러시아 원자력 공기업인 로사톰이 공사를 맡기로 하고 2017년 원전 공사 기공식을 열었다. 1200 메가와트 용량의 러시아형 가압수형 원자로인 VVER-1200를 설치하는 루푸르 1·2호 원전을 건설 중이다. 원래 2020년 완공 예정이었지만 공사가 지연돼 2023년으로 완공이 연기됐다. 로힝야 난민이 그때까지 머물다 전기 혜택을 본다는 건 지금 상황에선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경제가 발전한 유럽으로 간 난민은 자국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 기회가 있지만, 가난한 나라로 피신한 난민은 고향에서 누리던 전기 혜택도 없이 고달픈 살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 청년들. 뒤에 보이는 가설 주택은 대나무와 방수천으로 지었는데 안은 습하고 더웠다. 실내에서 불을 피워 밥을 지으면 연기가 자욱했다. 우상조 기자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 청년들. 뒤에 보이는 가설 주택은 대나무와 방수천으로 지었는데 안은 습하고 더웠다. 실내에서 불을 피워 밥을 지으면 연기가 자욱했다. 우상조 기자

기본 의식주는 국제인도주의 기구 지원

구호물자 분배처에도 찾아가봤다. ICRC를 비롯한 국제인도주의 기구가 지역을 나눠 배급을 답당하고 있었다. ICRC 한국사무소의 박지해 공보관은 “국제인도주의 기구들끼리 의논을 해서 어디에서 배급을 받아도 양과 품질의 차이가 나지 않는 ‘공정 분배’를 추구한다”라고 말했다. 현장에 가봤더니 쌀·콩·식용유 등 식량과 치약·칫솔·비누·수건 등 위생세트를 가족 숫자에 따라 나눠주고 있었다. 쌀은 이 지역에서 비교적 품질이 좋다는 파키스탄에서 수입한 것이었다. 방글라데시는 한때 세계적인 쌀 수출국이었지만 사회주의 정부가 농업 개발을 제대로 하지 못해 쌀 생산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다른 구호품도 품질이 좋았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제품도 있었다.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 위원회의 식량배급을 기다리던 한 난민이 식량 배급카드를 펴보이고 있다. 국제인도주의 기구는 무상 바급 물품을 이렇게 관리하지만 난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상권을 셩성하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난민촌에서 국제적십자 위원회의 식량배급을 기다리던 한 난민이 식량 배급카드를 펴보이고 있다. 국제인도주의 기구는 무상 바급 물품을 이렇게 관리하지만 난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상권을 셩성하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로힝야족’ 대신 ‘리카인 이탈자’ 표현

ICRC 콕스바자르 사무소의 공보 담당 무함마드 잠쉐는 “난민들이 집단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지난해 8월에 이 지역에 왔을 때는 사정이 심각했다”며 “국제인도주의 기구의 긴급 구호와 현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제는 난민들이 기본 의식주는 국제인도주의 기구의 도움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ICR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이후 미얀마에서 70만 명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 콕스 바자르 지역에 몰려왔다. 글로벌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로힝야족으로 부르지만 국제인도주의 기구에선 이들을 ‘라카인 이탈자(defector)’로 표현한다. 라카인은 이들이 미얀마에서 주로 몰려 살았던 라카인주를 가리킨다. 미얀마 정부는 이들이 별도의 종족이나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이 아니라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벵골 지역에서 부당 이주한 불법 이민자로 보기 때문이다. 공보 담당인 잠쉐는 “국제인도주의 기구는 미얀마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활동해야 하고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서 중립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정부가 거부감을 보이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며 ‘리카인 이탈자’라는 용어를 쓰는지 설명했다.

로힝야 난민촌 내부의 모습. 우상조 기자

로힝야 난민촌 내부의 모습. 우상조 기자

현지어 배우는 난민 늘어 

사실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의 표준어인 벵골 어로는 소통이 힘들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동남부의 차토그람(과거 영어로 치타공으로 부르던 도시가 독립 뒤 현지어인 차토그람으로 바뀜)과 콕스 바자르를 비롯한 지역의 사투리와는 80% 정도 통한다는 것이 잠쉐의 설명이었다. 게다가 ICRC의 현지 재활 프로그램 담당인 마푸즈 라흐만은 “최근 들어 난민들이 벵골어를 배워 방글라데시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로힝야 난민촌의 가게들. 과일과 채소, 향신료, 그리고 과자를 팔고 있다. 모두 국제 인도주의 기구에서 공급하지 않는 물자다. 난민들이 현지 주민과 물물교환을 해서 공급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채인택 기자

로힝야 난민촌의 가게들. 과일과 채소, 향신료, 그리고 과자를 팔고 있다. 모두 국제 인도주의 기구에서 공급하지 않는 물자다. 난민들이 현지 주민과 물물교환을 해서 공급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채인택 기자

쌀·콩 외에 함께 먹을 고기·채소·향신료도 요구

잠쉐의 통역으로 인터뷰를 시도했더니 상당수 난민은 “의식주는 해결되는데 그것 외에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호소했다. 한 난민은 “쌀과 콩만 주지 말고 함께 먹을 고기와 채소도 줘야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현재 무상 배급 수준으로는 일단 영양 문제가 해결될 뿐이니까 보다 질이 좋은 고기 배급을 원하는 셈이다.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의 통합여성 진료소. 기부한 나라의 국기를 그려놨는데 한가운데에 태극기도 보인다. 채인택 기자

방글라데시 동남부 콕스 바자르 주위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의 통합여성 진료소. 기부한 나라의 국기를 그려놨는데 한가운데에 태극기도 보인다. 채인택 기자

배급물자 밀거래, 위장 환자로 약 받아 팔기도

흥미로운 것은 이 말을 들은 다른 난민이 “쌀과 콩, 위생세트를 아껴서 팔면 고기와 채소, 향신료를 사거나 장사 밑천을 마련할 수도 있다”라고 대꾸했다는 점이다. 난민촌 입구를 가득 채운 로힝야 ‘국제시장’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난민들을 상대로 질문했더니 이들은 국제인도주의 기구로부터 무상 배급받은 물자를 현지 방글라데시 주민에게 넘기고 시장에서 팔 물건을 받아오는 도매 영업을 하는 상황이 드러났다.

로힝야 난민촌과 화장실. 국제 인도주의 기구가 물자를 대고 방글라데시 자원봉사자들이 하나하나 만들었다. 채인택 기자

로힝야 난민촌과 화장실. 국제 인도주의 기구가 물자를 대고 방글라데시 자원봉사자들이 하나하나 만들었다. 채인택 기자

난민들, 배급물자 토대로 거대 상권 형성

들은 말을 종합하면 우선 로힝야족 업자가 여러 난민 가정을 돌며 ‘남거나 아끼거나, 아니면 아예 팔려고 빼돌린 배급물자’를 수집한다. 이 업자는 이를 방글라데시 업자에게 정기적으로 다량 공급하고 그 대가로 난민촌에 무상 배급되지 않는 육류, 해산물, 채소, 향신료 등을 구매해 난민 시장의 로힝야족 소매 점포에 판다. 주로 미얀마에서 유통업에 종사하던 사람이 난민촌에서도 방글라데시 거래처를 뚫어 장사를 하는 것이다.
구색도 다양했다. 가스통과 석유도 팔고 있었다. 한 난민은 “장사로 돈을 번 일부 로힝야 난민은 석유를 쓰는 발전기를 구매해 전기를 생산해 쓰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난민촌에는 이러한 기호 식품은 물론 브라질 국기가 그려진 축구선수 유니폼, 축구공, 아이들 장난감까지 파는 가게도 보였다. 남녀 의류와 거울, 화장품을 파는 가게도 보였다.

로힝야 난민 소년이 배급 식량을 을고 가고 있다. 뒤에 난민 시장에서 파는 가스통이 보인다. 우상조 기자

로힝야 난민 소년이 배급 식량을 을고 가고 있다. 뒤에 난민 시장에서 파는 가스통이 보인다. 우상조 기자

인도주의 진료소에서 배급한 의약품 유통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전혀 ‘배급’되지 않는 의약품을 파는 약국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그 비밀도 한 난민과의 대화에서 드러났다. 한 남성 난민이 자신의 부인이 난민촌에 국제인도주의 단체가 설치한 여러 병원을 돌며 약을 받아온 뒤 이를 다른 난민이 운영하는 난민촌 약국에 넘긴다는 것이다. 자신은 재봉틀을 돌려 의복을 수선하는 게 직업인데 미얀마 무장대원에 쫓겨 국경을 넘을 때 아무것도 들고 오지 못해 난민촌에서 수입이 없자 부인이 나섰다는 것이다. 그와 대화를 하는 시간 부인은 태국 의사들이 운영하는 근처의 진료소에 가서 배가 아픈 척하면서 소화제 등을 받고 있었다. 인도주의를 실천하러 온 의사들이 운영하는 난민촌 진료소이니만큼 약을 후하게 아예 포장째로 준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찾아가 서로 다른 중상을 이야기하고 다양한 약을 받아온다는 설명까지 했다. 아이들을 데려가 해열제 좌약을 통으로 받아오기도 한다.
이 남자는 최근 방글라데시인 독지가가 재봉틀을 선물해 이제 사정이 괜찮아졌다는 이야기를 하려다 자신의 부인이 하는 ‘위장 환자’ 노릇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민촌 ‘국제시장’에 줄줄이 있던 난민 약국에서 파는 의약품이 왜 그리 다양하고 포장이 깔끔한지 비밀을 알게 됐다. 난민촌 가설 약국과 이 나라 수도 다카에서 본 현지인 약국과의 차이라곤 시멘트 건물이 아닌 대나무와 방수포로 만든 가건물에 자리 잡았다는 것뿐이었다.

난민 경제 운용하며 자존감 강해 

이처럼 난민들은 난민촌에서 경제적 자립을 시도하고 있었다. 필요가 수요를 낳은 셈이다. 한국인이 6·25전쟁 당시 부산 국제시장이나 서울 수복 뒤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방산시장 등에서 했던 구호물자 유통업이 방글라데시의 로힝야족 난민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얀마에 살 때도 교역과 가게 운영에서 능력을 발휘했던 로힝야족 난민들의 난민촌 생존력이다. 타고만 상인의 기질을 난민촌에서도 발휘하며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는 모습일 수도 있겠다.

로힝야 난민촌의 임시 주택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이 놓여있다. 난민촌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모은 난민은 전기가 없는 이곳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휴대 전화 충전으 할 정도의 전력을 얻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로힝야 난민촌의 임시 주택 지붕에 태양광 전지판이 놓여있다. 난민촌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돈을 모은 난민은 전기가 없는 이곳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휴대 전화 충전으 할 정도의 전력을 얻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난민들도 난민촌에서 나름대로 경제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다. 난민들과 처음 만나 대화를 해봤더니 이들이 자신들이 ‘능력과 인격을 갖춘 개인’이 아닌 ‘집단적이고 동일한 난민’으로 취급받는 것에 거부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질문을 할 때 미얀마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를 물었더니 아주 반가워했다. 난민촌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던 어떤 여성은 이 질문을 하자 “미얀마에선 비즈니스를 크게 하던 여성 사업가였다”라며 "명예롭게 귀향하게 되면 다시 식당을 크게 열겠다"라며 표정이 환해졌다.

로힝야 난민들이 국제 인도주의 기구에서 받은 무상 배급품을 옮기는 뒤로 난민이 운영하는 가게가 보인다. 난민 경제의 현장이다. 우상조 기자

로힝야 난민들이 국제 인도주의 기구에서 받은 무상 배급품을 옮기는 뒤로 난민이 운영하는 가게가 보인다. 난민 경제의 현장이다. 우상조 기자

난민에겐 식량과 생필품 공급도 중요하지만, 자존감을 북돋워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다. 로힝야 난민촌을 돌아다니면서 대화를 시도한 끝에 든 생각이다. 난민도 저마다 개성이 있는 인간이다. 문제는 수많은 사람이 난민을 대하면서 이를 잊는 일이 왕왕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한때 난민 또는 이주민이었는데 말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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