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풍'속에 살아난 '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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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 순위가 뒤바뀐 끝에 승리한 김태환 제주지사가 당선 확정 뒤 웃고 있다. [연합뉴스]

숨막히는 대혈전이었다. 개표율 9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특별자치도 제주호의 선장은 도무지 점칠 수가 없었다. 드디어 1일 오전 2시30분 '제주 드라마'는 끝났다. 결과는 무소속 김태환 후보 11만7244표, 한나라당 현명관 후보 11만2774표. 4470표의 차이…. 1.6%포인트 차로 당선자가 갈렸다. 개표 과정에서 5시간 동안 다섯 번이나 순위가 바뀌었다.

"박근혜 대표가 하루만 더 일찍 제주를 찾았더라면…. " 개표 막바지 패색이 짙어지자 현명관 후보의 선거진영에서 이런 탄식이 흘러나왔다. 태풍의 길목 제주는 '박풍(朴風)'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도 '무소속'을 택했다. 특유의 '여당도 야당도 아닌 괸당(친척을 일컫는 제주 사투리)'이란 정서가 그대로 드러났다.

김태환 당선자에겐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입지전적인', 그리고 '신화적인'이다. 제주에서도 시골인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에서 태어난 그는 전북 전주에서 중.고교를 나왔다.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홀어머니와 살던 그는 일제하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숙부인 김시곤(1901~83)선생이 터잡은 전주로 유학을 떠났다.

4.3사건의 참화가 가시지 않았던 때였다. "말이 좋아 유학이지, 고독과 슬픔 속에서 홀로서기의 주춧돌을 쌓았다"고 그는 당시를 회상한다. 고교를 나온 그는 어머니를 모시려 고향 제주로 내려왔다. 제주대 법대를 졸업했고 두 차례 사법시험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먹고 살길이 급했다". 그래서 9급 공무원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64년 제주시 말단 공무원에서부터 차근차근 밟아갔다.

오전 6시만 되면 어김없이 집밖을 나섰고, 한번 맺은 인연은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70년부터 10여년간 내무부에 근무한 뒤 82년 제주도 기획관으로 귀임, 남제주군수와 관선 제주시장까지 승승장구하던 그는 또 다른 별명도 얻었다. '경조사 시장.군수'였다. 조금만 인연이 있는 주민은 꼭 챙겼다.

그 결과 그는 민선 2기와 3기 제주시장 선거전에서 연거푸 승리했다. 여세로 2004년 우근민 전 지사의 선거법 위반에 따른 낙마로 치러진 재선거에서도 그는 지사직에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 이번 선거는 시련이었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제주도지사가 됐으나 단체장 정당공천 무용론을 폈던 그는 경제계 거물인 현명관 삼성물산 회장의 영입과 전략공천설이 나오자 1월 탈당,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김 당선자는 '웬만한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 사람'이란 평판대로 바닥 민심을 다시 훑어갔다. 오랜 공직생활로 다져온 그의 밑바닥 지지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중앙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제주도민의 자존심을 보여달라"고 그는 절규했다. 선거 전날인 지난달 30일 박근혜 대표가 오후 6시 제주시청 앞에서 현 후보를 지원 유세하자 바로 3시간 뒤인 오후 9시 똑같은 장소에서 맞불 유세전을 폈다. 몰려든 군중이 더 많았다. 막판 불어온 박풍도 바닥민심을 뒤흔들지 못한 것이다.

▶제주도 북제주군(64) ▶전주고.제주대 법대 ▶남제주군수 ▶제주도 행정부지사 ▶제주시장(민선 2, 3기) ▶제주지사(재선거 당선)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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