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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다음날 '바닥'서 살펴본 성난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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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성동구는 한나라당의 돌풍이 거세게 불었던 2002년 지방선거에서도 여당 구청장을 배출했을 만큼 현 여권 강세 지역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한나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두 배 이상의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바닥 민심이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취재팀은 지난 세 차례(1995, 1998, 2002년)의 구청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한 번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던 관악구.성동구.중구를 찾아 달라진 민심의 흐름을 살펴봤다.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하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신림동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김정수(58)씨는 요즘 서민경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우리 가게 앞 건물은 권리금이 2억원이다. 그거 안 받고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또 이 앞 중국집은 자장면이 2000원이다. 500원이라도 더 받으면 안 올 사람들 많기 때문이다. 다들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힘들다고 한다." 택시기사 최경두(60.봉천동)씨는 "정부가 추진하는 과거사고, 민주화고 다 좋다. 하지만 국민이 먹고살 길을 열어 주는 게 제일 중요하다. '서민, 서민' 하면서 서민경제를 다 죽였다"고 비판했다.

여권이 이념적인 문제에만 몰두한다는 비판도 적잖았다. 유순영(61)씨는 "정부는 국민적 동의도 없이 북한에 퍼줄 생각만 하고 있다"며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대패한 것은 낡은 이념정치에 매달려 실생활 정치를 하지 못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무능과 정책 혼선도 민심 이반을 부채질했다. 행당1동에서 정육점을 하는 김우석(50)씨는 "현 정부는 성수동에 서울숲이 생긴 뒤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고 성동구 전체를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했다"며 "여기 아파트값은 강남의 3분의 1도 안 되는데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림동에서 수퍼마켓을 하는 김모(58)씨는 "이 정부는 뭐든지 자기네가 하는 게 다 옳고, 일이 잘못되면 국민이 이해가 부족해 실패했다는 식으로 둘러댄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인 젊은 세대도 고개를 돌렸다. 대기업 연구직 안병호(29)씨는 "열린우리당이 종합부동산세 등 뭔가 하려고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양극화란 단어를 앞세워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봉성(32)씨는 "2004년 총선 때는 열린우리당을 한번 더 믿어 보자고 생각했는데 이젠 미련을 다 버렸다"고 단언했다. 군대에 보낸 자식을 둔 회사원 유모(48)씨는 "시위대가 군인들까지 구타하는 장면을 보면 나라 장래가 정말 걱정"이라며 "야당을 밀어주는 게 엄정한 공권력 확립을 위해 더 낫다고 봤다"고 전했다.

이날 서울의 길거리에서 들은 민심 속에는 5.31 지방선거 결과가 열린우리당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평가를 담고 있었다. 여당과 정부가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게 하고 국가 진로를 불투명하게 만들었다는 불만들이 쏟아졌다. 주부 김옥래(48.강북구 수유동)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중치 못한 말투도 문제지만 여당 지도부가 국민통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분란을 일으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대 송호근(사회학) 교수는 "열린우리당이 개혁정치라는 방향을 정하고 달려가기에 급급해 국민의 마음을 읽는 데 소홀했다. 2004년 총선에서 국민이 잔뜩 기대를 걸었다 좌절하면서 반작용이 더 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애란.박성우.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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