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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다출산' 상 주는 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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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스 중부도시 라샤트르 인근 시골에 사는 이사벨(42)은 지난달 31일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을 맛봤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키워 온 그녀가 석공인 남편과 함께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궁에 들어가 자크 시라크 대통령으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 선물은 네 자녀를 훌륭하게 잘 키웠다며 국가가 수여하는 '프랑스 가족 메달'이다.

'프랑스 가족 메달'은 1920년 낮은 출산율로 고민하던 프랑스 정부가 출산 장려를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여러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가 수여 대상이었지만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아버지까지 수상 대상에 포함했다.

프랑스가족메달연맹(FNMFF)은 매년 지자체에서 추천받은 후보들을 엄격히 심사해 이 메달 수상자를 결정한다. 메달을 받으려면 우선 네 명 이상의 자녀를 둬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많이만 낳는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말과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올바른 정신을 심어 준 모범 부모여야 한다. 그래서 자녀의 신상명세서와 이웃의 증언을 담은 서류가 판단 자료로서 심사위원들에게 제공된다.

수여하는 메달 종류는 금.은.동 세 가지다. 금메달은 8명 이상의 자녀를 가진 가구가 대상이며 은메달은 6~7명의 자녀를, 그리고 동메달은 4~5명의 자녀를 둔 가정이 대상이다. 메달을 받는 부모는 매년 수천 명에 이른다. 그중 몇몇은 이사벨 부부처럼 엘리제궁에까지 초대받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장한 어버이 메달'을 받는다. 가족 해체가 가속화하고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요즘, 가정의 의미를 되새기고 출산도 장려하는 범국가적 이벤트다.

2005년 기준으로 프랑스 여성 한 명이 가임 기간에 낳는 평균 자녀 수(합계출산율)는 1.94명. 유럽연합(EU) 국가 중 아일랜드(1.99)에 이어 둘째다. 1905년 유럽에서 꼴찌였던 출산율이 100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수직 상승한 사실 때문에 프랑스는 출산 장려 정책의 성공모델로 자주 거론된다.

문득 프랑스 유력지에 대문짝만하게 난 이사벨의 평범한 가족사진을 보면서, 자녀를 많이 낳아 잘 기른 가정을 국가가 이처럼 영예롭게 만들어 주는 게 무엇보다도 큰 힘이 됐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경덕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