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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민족체통 생각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 왕「히로히토」의 죽음은 그가 살았던 한 시대의 일본과 그의 통치하에서 온갖 상처를 입었던 우리 민족의 수난을 아울러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본의 언론과 지배층이 연출한 계산된 대중 조작을 응시하면서 특히「침략전쟁 부인론」에 이어지는 군국주의의 들먹임에, 분노를 삼켜야 했다.
「히로히토」는 분명히 일본의 최고 통치권자였는데도 가증스런 침략과 전쟁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채 운수 좋게 여생을 마쳤다.「선」이라고 하는 영국의 한 일간지는 바로 이점을 다음과 같이 꾜집었다.
「히로히토」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 이유로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그가 지금까지 그토록 장수한 것, 둘째는 20세기의 가장 어리석은 여러 죄과에 대하여 그가 처벌받지 않은 채로 죽었다는 사실이다.
「히로히토」는 1945년 9월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를 찾아간 자리에서 딱 한번 전쟁책임을 자인하고 머리를 조아렸을 뿐이다.『패전한 전쟁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을 귀하가 대표하는 연합국의 결정에 맡기겠다. 나는 교수형도 각오하고 있다』
그후로는 어느 나라의 누구에 대해서도 제대로 사죄의 말을 한 흔적이 없다. 심지어 미·영·불 등 전승국을 찾아갔을 적에도 외교적(?) 인 언사로 어물쩡 넘겨버리곤 했었다.
1985년 9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에 갔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묘한 말을 늘어놓았다.
『금세기의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의 불행한 과거가 존재했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그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침략자의 인사말치고는 지극히 맹랑한 소리였다. 죄책을 자인하는 표현은 한 대목도 없었다.
그러나 「꿈보다 해몽」이라고 했던가. 전두환 정권과 그에 추종하는 일부 식자들은「히로히토」의「유감」 이란 말 한마디를 놓고 대단한 사과나 받아낸 듯이 수다를 떨었다.
영국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좀 다르다.
1971년「히로히토」가 런던을 방문했을 때, 「엘리자베드」여왕은 극진한 영접행사로 그를 맞아 앉혀놓고 이런 뼈있는 말을 퍼부었다.
『엄연히 있었던 과거의 일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수는 없다』그러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어떠했는가.
일본 안의 소위「친한파」라는 정객들과 유착해서 떳떳하지 못한 야합을 되풀이했는가 하면 한때나마 한일 군사동맹설까지 나돌았었다. 독재의 후원과 경제의 유착이 얽히고 맛 물리는 가운데 민족의 자주와 정기는 줏대없이 비틀거렸다.
일본 역사 교과서의 왜곡을 규탄하는 민족의 분노가 치솟았을 때, 정부는 난데없이 독립기념관 모금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흐려놓기도 했다.
국가나 개인이나 간에 지난날의 일로 언제까지나 원한만 품고 살수는 없고 그러나 한일간에는 아직도 침략의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 독로까지를 염두에 둔다면 한일 기본 조약은 더구나 두 나라 사이의 청산문서가 되지 못한다.
뿐인가. 사할린 동포의 귀환문제,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문 강요 등에서 드러난 민족 차별,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의 참상, 재일 동포의 불안한 법적지위 등 침략과 차별의 청산과제는 아직도 산처럼 쌓여있다.
「히로히토」가 죽었다고 해서 그의 시대가 남긴 일제의 생채기가 치유되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 우리는 김구·이봉창·박렬과 같은 선열들의 부름뜬 눈을 외면할 수 없지 않은가.
항일투사와 순국선열의 유족 단체는 물론이고 종교계와 재야 단체를 비롯한 각계의 국민들은 이번에 정부가 일왕의 장례식에 조문사절을 보내는 것조차도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누가 국제친선이니 선린외교니 하는 것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이같은 국민의 분노를 깊이 유념하여 민족의 체통을 세우는 자주성을 견지하면서 양국간의 현안문제 타결에 보다 강력한 자세를 갖추고 나가야 할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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