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향기] 때론 무모함이 세상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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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어떻게 스승의 몸에 칼을 댈 수 있습니까." 유의태의 시신 앞에서 허준이 망설이자, 삼적대사는 "스승의 숭고한 뜻을 그르칠 셈이냐"고 다그친다. 이윽고 허준이 떨리는 손으로 칼을 들어 인체 내부를 들여다본 뒤 그림으로 옮겨, 이른바 '신형장부도'라는 것을 완성하게 된다.

오늘날엔 임상시험 전 동물을 실험에 이용하고 있지만 예전엔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마취제 없이 수술을 가능하게 한 과학자가 치과의사였던 호레이스 웰스다. 웰스는 19세기 중반 상류층 사이에서 웃음가스(아산화질소)를 마시고 향락에 빠지는 은밀한 파티에 우연히 참석하게 된다. 이를 본 웰스는 치아를 뽑을 때 웃음가스를 흡입하면 고통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해 이를 직접 흡입한 뒤 자신의 썩은 이를 고통없이 뽑았고, 이후 용기를 얻어 공개 실험을 감행했다. 그러나 마취에 필요한 아산화질소의 정확한 양을 몰랐던 그는 공개실험에서 창피를 당했다. 웰스는 이후 약물중독과 정신이상자란 꼬리표를 달아가면서 자신의 몸에 아산화질소를 투여했다. 결국 전신 및 국부 마취에 필요한 표준량을 알아냈다. 그러나 웰스의 이러한 업적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22년이 지나서야 미국 의학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고무 또는 금속제의 가느다란 관인 카테테르(Catheter)를 심장에 꽂아 심장병 검사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독일의 젊은 수련의 베르너 포르스만 역시 자신의 몸으로 실험에 성공한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 보수적인 의학계의 비웃음 속에서도 포르스만은 자신의 심장에 가늘고 긴 관을 64㎝나 찔러 넣는 무모한(?) 실험을 감행했다.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한 실험에 성공한 포르스만은 그로부터 27년이 흐른 1956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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