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자블로그] 여자바둑과 월마트 … 평양에서 FTA를 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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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최근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북측 인사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왜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려 하느냐며 물었습니다. 미국에 잡혀 먹힐 것이라며 은근히 걱정해줬습니다. 힘 약한 사람이 센 사람과 맞붙으면 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죠.

그때마다 기자는 한국의 여성 바둑계 얘기를 했습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루이나이웨이라는 중국 여성이 한국 바둑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계에서 아주 바둑을 잘 두는 여성 중 한 명이지요. 그가 1990년 중국을 떠나 일본에서 활동하려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결사반대했습니다. 일본 여성 바둑계가 초토화된다는 이유였습니다. 몇 년을 기다려도 희망이 보이지 않자 이번엔 한국 문을 두드렸어요. 한국 남성들도 옹졸했던지 '여성 보호론'을 앞세워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여성 기사들은 "왜 막느냐"며 오히려 그의 편을 들었습니다. "부지런히 배워 이기면 된다"고 했지요. 정작 여성들이 찬성하고 나서니 남성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이나이웨이는 99년 한국에 왔습니다. 당연히 여성 바둑계를 휩쓸었고요. 이창호 9단과 조훈현 9단을 연파해 여성으로선 사상 최초로 '국수'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젊은 여성 기사들이 열심히 실력을 키웠습니다. 2003년 당시 18세였던 조혜연씨가 루이나이웨이를 잇따라 이겨 여류 명인과 여류 국수를 차지했습니다. 이듬해는 21세 박지은씨가 그를 이기고 정관장배 세계여성바둑 챔피언이 됐습니다. 이때부터 여성 바둑계는 '삼국지'로 불리며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실력도 일취월장했습니다. 한.중.일 3국 중 단연 꼴찌였습니다만, 지금은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렸습니다. 이렇게 얘기한 뒤 북측 인사들에게 덧붙였습니다. 당신들은 늘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얘기하지 않느냐, 실제로 우리 민족의 저력은 엄청나다, 미국이 대단하다지만 맞붙으면 몇 년 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그러니 당신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개방의 문을 활짝 열어 달라고 말입니다. 귀국하니 세계 최대의 할인점인 미국 월마트가 한국에선 도저히 승산이 없다며 철수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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