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완의광고로보는세상] 영리한 '딱정벌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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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거 귀국한 MBA들의 영향으로 한때 '광고의 과학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신제품 개발은 물론 한국 제품이 경쟁 제품에 비해 무엇이 우수한지를 알기 위해서도 대규모 정량 조사를 하곤 했었다. 15초짜리 TV 광고를 잘게 썰어 상표명과 제품을 어느 자리에 몇 번 위치시킬 것인가도 소비자 패널의 의견에 따라 결정했다. '소비자는 숙취 없는 술을 원한다'는 사실도 조사 데이터가 없으면 믿지 않았다. 그야말로 '조사하면 다 나와!'였던 셈이다.

광고인 중에는 조사 결과를 맹신하는 사람도 있고 철저히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라면 이런 유머를 좋아할 것이다. 오래전 어느 외국인 조사 전문가가 폴란드에 가서 노동자 한 명을 인터뷰했다. "지금 직업에 만족하나요?" "네, 아주 만족합니다." "거처하는 아파트는 어떤가요?" "현대적이고 넓고 그리고 임대료도 아주 저렴합니다." "여가 활동으로는 어떤 걸 하지요?" "오페라와 연극 관람을 합니다." "라디오는 있나요?" "물론이지요. 아니면 당신의 그 바보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겠어요?"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개발된 신제품과 충분한 조사를 통해 검증된 광고가 대개는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은 자신이 받은 자극에 절대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태도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섭씨 15도의 물을 따뜻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섭씨 5도의 물에 손을 담그고 있던 소비자에게는 진실이다. 그러나 섭씨 25도의 소비자에게는 거짓인 것이다. 가을날 서울에 도착한 에스키모인과 아프리카인을 상상해 봐도 마찬가지다.

1960년 나온 폴크스바겐 광고는 지금도 뛰어난 창의력의 표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정말일까? 2차대전의 승리와 함께 찾아온 미국의 호황기는 60년대 절정을 이룬다. 따라서 자동차도 커지고, 화려해지고, 비싸지는 추세에 있었다. 매년 디자인을 바꾸었기 때문에 지난해에 산 차도 올해 벌써 구형이 되곤 했다.

그런데 '또 한 대의 자동차'가 점차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땅한 대중교통 수단도 없는 교외에서 멀리 떨어진 수퍼마켓까지 쇼핑을 가야만 하는 주부에게 제2의 자동차는 시급한 문제였다. 그렇다고 비싼 미국 자동차를 또 한 대 사자니 부담스럽고…. 폴크스바겐이야말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었다. 폴크스바겐은 우선 비싸지 않았고 덩치가 작아 아무 데나 주차하기 쉬웠다. 따라서 이 '딱정벌레'가 미국 가정의 차고를 가득 채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경쟁 관계였더라면 폴크스바겐 캠페인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30, 40, 70년대에 미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폴크스바겐 같은 소형차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상품이, 이렇게 훌륭한 인물이 시장에서 선택되지 못했다면 분명히 소비자를 잘못 읽은 탓이다. 마케팅에도 정치에도 통찰력과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다.

김도완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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