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新남북시대] 해외학자 좌담 - 북한 경제 어디까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 토론 참석자

▶ 피터 헤이즈 노틸러스 연구소장

▶ 왕이저우(王逸丹) 중국사회과학원 부소장

▶ 노다리 시모니야러 과학아카데미 소장

▶ 미무라 미쓰히로(三村光弘) 일본 ERINA 연구원

▶ 사회=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


북한의 7.1경제조치와 6자회담 등 북한이 당면한 현안을 놓고 해외학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미무라 미쓰히로 일본 ERINA 연구원, 피터 헤이즈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장,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왕이저우 중국 사회과학원 부소장, 노다리 시모니야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소장.

북한은 최근 평양 시내에 상업광고판 설치를 검토하는 등 '경제개혁적 조치'를 계속 추진하고 있으나 환율 인상, 식량난 등으로 경제상황이 혼조를 거듭하고 있다.

핵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의 대치국면도 경제 회복에 결정적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 전문가와 함께 북한이 당면한 이 같은 현안들을 점검하는 죄담회를 열었다.[편집자]

▶사회='경제적 일관성(Economic Consistency)'이라는 이론에 따르면 한 국가의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원보다 내부적 개혁이 더 큰 역할을 한다. 중국의 경제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원동력이 내부에서 동원됐기 때문이다. 북한의 경우 지난해 경제관리개선 조치 이후 이러한 추진력이 보이는가.

▶왕이저우=중국의 경험을 감안할 때 북한의 7.1경제관리개선 조치는 시장을 실질적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라고 평가하고 싶다. 특히 가격 개혁과 신의주특구 조성 발표 등은 북한이 시장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판단된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경제조치 이전 1970년대 중반에 중국에선 가격조정 조치가 있었지만, 계획경제하의 지령형 조정이었다. 그러나 그후 덩샤오핑의 경제개혁은 첫째 외부자본 도입,둘째 현대화를 목표로 삼았다. 반면 북한의 7.1경제조치는 아직까지 계획ㆍ지령형 조치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변화의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개선 조치들은 긍정적이며, 향후 '내부 추진력 확보 차원'에서의 후속조치들이 취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헤이즈=물론 내부 원동력이 중요하지만 북한처럼 경제가 피폐한 경우 외부의 도움 없이 어떤 경제적 변화를 취해나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현재 북한의 경제조치는 대립적ㆍ혼합적 특징을 가진다 할 수 있다. 즉 기존의 '계획경제틀'에 새로운 '시장적 요소'를 조심스럽게 덧붙이고 있다. 사상을 중시하는 김일성과 다르게, 김정일은 국가운영에서 경제적 측면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변화를 시도할 경우 체제유지에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로 아직까지는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미무라=지난해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판매 수입의 일부를 기업소가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강화됐다. 이는 '외부의 변화'가 아닌 '내부의 변화'다. 김정일이 향후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르는 북한 내 정치 사회적 변화에 어떤 자세를 갖고 있느냐가 내부 동원력이 보다 확보될 수 있을지를 따지는 관건이 될 것이다.

▶시모니야=러시아의 시장경제화라는 경험에서 볼 때 임금.가격인상을 골자로 하는 북한의 경제관리개선조치는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 성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불가역적(不可逆的)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구소련에서 강성정권인 브레즈네프 시절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조치가 한번 취해지자 사회가 불안전해졌으나, 이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헤이즈=북한의 한 마을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개발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이때 보니 아무리 고립된 곳이라도 외국과 연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태국산 백열등을 마을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폐전구를 수집했는데, 그 중에는 우리가 제공한 적이 없는 다른 외국산 전구도 발견할 수 있었다. 즉, 북한 내에 계획에 의존하지 않는 일종의'구매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시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이지만 그런 방향으로의 변화는 진행 중이다.

▶사회=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6자회담이 진행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관심을 끌고 있다.

▶시모니야=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했다. 따라서 북한은 러시아가 아닌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을 원한다. 이 때문에 북.미 간에 안전보장.핵포기의 문제가 선결된 후 나머지 국가들의 개입이 필요한 것이다.

▶왕이저우=시모니야 소장의 견해와 다르다.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6개국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미국과 북한이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중국 및 러시아의 안전보장이 있어야 북.미 간 협상이 더욱 수월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시모니야=러시아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한다고 해도 만약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과연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러시아가 북한에 군대를 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사회=최근 북한은 "불가역적인 핵개발 포기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과연 북한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강행할 것으로 보나.

▶헤이즈=장기적으로 볼 때 북한은 핵개발 강행보다 점진적으로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우리도 그렇게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주변국들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북한을 지원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미무라=북한은 자신의 안보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외부의 어떤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은 1994년 미국과의 협상 당시 '벼랑끝 전술'로 상당부분의 과실을 얻어낸 것에 대해 아직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사회=6자회담의 전망과 만약 이 회담이 잘 풀린다면 어떤 형태가 될 것으로 보는가.

▶시모니야=북한과 미국이 동시에 양보(simultaneous concession) 해야 한다. 북핵 협상은 물품 구매와 비교할 수 있다. 한 사람이 팔고 다른 사람이 살 때 적절한 가격이 결정된다. 따라서 북핵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단둘이 앉아 각각 '안전보장'과 '핵포기'를 결정하고 이를 문서화해야 한다. 이후 북한과 주변국이 협상해 경제협력.일본인 피랍 문제 등을 논의해야 한다.

정리=고수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