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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이치노유 여관' 15代 사장 오가와 하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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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 온천의 대명사로 불리는 도쿄(東京) 인근 가나가와(神奈川)현 하코네(箱根). 이 근처 온천여관들은 요즘 비상이다. 하코네에서 여섯개의 소형 온천여관을 운영하며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이치노유(一の湯)'가 오는 26일 또 하나의 온천여관을 열기 때문이다.

경기 불황으로 다른 온천여관들이 평일과 주말을 합해 평균 50% 안팎의 객실 가동률에 허덕이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나 이치노유는 놀랍게도 평균 95%의 가동률을 자랑한다.

주말의 경우 넉달치 예약이 밀려 있을 정도다. 그러니 하코네에 있는 1백10여개의 다른 온천여관들이 바짝 긴장할 만하다.

지금으로부터 3백73년 전인 1630년 에도(江戶)시대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 막부 시절에 지금 본관이 있는 자리에서 영업을 시작한 이치노유 여관. 이곳은 1625년 문을 연 후쿠즈미(福住)온천여관과 더불어 하코네 온천의 '역사' 그 자체다.

이렇게 오래된 온천 여관이 새로운 전략으로 똘똘 뭉친 신식 여관들을 제친 비결은 뭘까.

지난 6일 15대 사장인 오가와 하루야(小川晴也.54) 대표를 만났다. 도쿄에서 약 1시간30분 거리의 하코네 유모토(湯本)역에서 국도 1호선을 타고 약 1km를 걸어 올라가니 경관이 빼어난 계곡이 나타났다. 그 계곡을 끼고 이치노유 본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오가와 사장은 15대째 내려오고 있는 '경영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실패도 있었지만 항상 '하코네의 선두주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한 것이 오늘의 성공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치노유는 1915년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을 가져와 욕탕을 만들었다. 또 54년에는 과감히 냉.온방 시설을 갖추고 방마다 서양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모든 것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오가와가의 가훈은 "서른살 때까지는 남의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의 밑에서 일해봐야 직원들의 어려운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조부(13대 사장)는 대학 졸업 후 요코하마(橫濱)의 한 무역회사에서, 부친(14대 사장)은 미쓰이(三井) 광산에서 7~8년간 근무했고, 현 오가와 사장도 게이오(慶應)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컴퓨터 회사에서 영업직으로 7년을 뛴 후 이치노유에 합류했다.

또 하나 이치노유의 특징은 가격이 파격적으로 싸다는 것이다. 하룻밤 자고 저녁.아침식사가 제공되는데 1인당 6천8백엔(약 6만8천원)이다. 다른 곳은 평균 1만1천~1만4천엔 수준이다.

이치노유의 '가격혁명'은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치노유는 당시 고급 온천여관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손님을 뺏기자 당시 2만2천엔이던 요금을 1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9천8백엔으로 내렸다.

하지만 가격을 내린 만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문제였다. 종업원의 총 노동시간을 시간 단위에서 분 단위로 계산하고,이익을 내지 못하는 노동 시간을 철저히 줄였다.

예컨대 프런트에는 안내 요원 한명만 두고 관내 안내나 식사메뉴 같은 것은 여러 곳에 자세히 써 붙였다. 단체여행객을 알선해 오는 여행사에 주는 수수료도 모두 끊어버렸다. 냉장고에 음료수를 넣어두지 않고 고객이 자동판매기에서 사서 넣을 수 있도록 했다.그러자 당장 생산성이 세배가 올랐다.

"손님이 몰리니 주변 여관에서 당장 견제가 들어오더군요. '하코네를 똥값으로 만들 작정이냐'는 심한 말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다른 여관들도 구조조정을 통한 저가 전략으로 돌아섰습니다."

하코네=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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