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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통일 13주년 맞아 獨 다녀온 이호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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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0여년 전 독일을 찾았을 때보다 실업자는 많이 늘었지만 분위기가 매우 밝아졌습니다. 황량한 맛이 덜한 것 같고요."

지난 15일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시작된 아시아.태평양 축제주간에 한국문인대표로 참석한 소설가 이호철(李浩哲.71)씨가 통일 13주년을 맞아 옛 동독 지역을 둘러본 소감이다.

그는 "삶의 질은 높아졌지만 경쟁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옛 동독 주민의 하소연이 찡하게 가슴에 와닿는다"고 했다.

행사 참여와 별도로 통일을 주제로 한 새 단편을 구상하기 위해 일주일간 베를린 인근을 누볐다는 그는 "독일이 겉으로는 봉합이 됐지만 아직도 내적 통합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李씨는 "한국보다 통일문제에 훨씬 많은 고민을 하고 대비해왔다는 독일이 이럴진대 남북관계는 더욱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특히 2000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독일의 대표작가 마틴 발저와의 짧은 만남에서 통일에 관해 의견을 나눈 것이 사뭇 인상적이라고 전했다.

그는 "발저가 한반도 통일이 언젠가는 이뤄지겠지만 10년 안에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고 전하면서 "통일을 뜨겁게 염원하는 남북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데 비례해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라는 충고에 공감이 간다"고 덧붙였다.

李씨는 통일문제를 다루는 국내작가들에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이념이나 체제 위주로만 접근하기가 다반사라, 너무 상투적이고 진정으로 가슴에 와닿는 메시지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그는 "남북한의 문제는 처음부터 양측 정치권력을 장작 쪼개듯이 빠개서 보여줄 때만 그 모습이 선열(鮮烈)해진다"면서 "우리나라의 통일은 남과 북의 양측 권력이 공히 그 지나친 고압성(高壓性)에서 벗어나 평상(平常)의 사람살이 수준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베를린의 일간 타게스슈피겔지는 李씨가 펴낸 실화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의 독일어판에 대해 "개인적 시각에 입각해 한국의 내전을 꾸밈없이 인상 깊게 그려냈다"면서 "통일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찬 작품"이라고 평했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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