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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유명 국내외 시계"백화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종로4가 네거리 조흥은행 동대문지점 옆에는 청계천으로 통하는 좀은 골목이 하나 있다.
여기가 바로 『시계에 관한 한 없는 것이 없다』는 「시계골목」.
종록쪽 입구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길이 1m남짓의 유리진열장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속칭「쇠팔이」로 불리는 시계 노점상들이다.
골목을 좀더 안 쪽으로 들어가면 70∼1백평 규모의 상가 안에 각종 시계상들이 비좁게 들어선「시계 백화점」들도 눈에 띈다.
이곳 시계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시계상의 수는 노점상 3백50여개, 점포 1백50여개 등 모두 5백여개.
거래되는 시계도 새끼손가락에 끼고 다닐 수 있는 콩알 3개 크기의「반지시계」로부터 사람 키보다도 더 큰 벽시계에 이르기까지 수백 종에 달한다.
메이커별로도 중소업체의 무명 제품으로부터 「오리엔트」「카리타스」「오딘」「갤럭시」등 국내 유명브랜드와「세이코」「론진」「라도」「오메가」「돌체」「불로바」등 해외 유명브랜드에 이르기까지 없는게 없다.
69년이래 이곳에서 시계상을 해오고 있다는 한진상사의 이호성 사장(56)은 이「시계골목」이 50년대부터 시작돼 4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당 시절 청계 4, 5가를 따라 6∼7개의 시계상들이 모여 장사를 하다가 60년대 초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종로와의 길목을 찾아 모여든 것이 시초라는 것. 그뒤 60년대말께 고급 국산시계가 생산되면서 크게 번창, 이씨가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쯤인 68년부터 78년까지가 전성기였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사양길에 접어든 느낌이라고 아쉬워한다.
이곳에서 파는 시계의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시중 점포들보다는 20∼30%정도 싸다는 것이 상인들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시중에서 5만∼6만원 하는 전자식 배터리용 애널로그 시계가 여기에서는 2만5천∼3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탁상시계 및 벽 시계는 시중가격 3만원인 것이 여기서는 1만∼2만윈 선에 살수 있으며 사람 키만한 (5자반) 괘종시계의 경우 시중에서 12만∼13만원 하는 것이 8만∼9만원만 주면 구입할 수 있다.
이같이 가격이 싼 것은 박리다매 방식을 취해 일반소비자들에게 도매 값으로 판매하는데도 이유가 있기만 수많은 점포들이 한곳에 몰러 있어 싼값에라도 팔려는 시계상들의 판매경쟁이 치열한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치열한 경쟁 때문에 요즈음 시계상들이 「재미」를 못보고 있다는 불평도 있다. 이곳에서 시계상을 한지 10년 정도 된다는 시원사의 윤현낙 사장(55)은『점포끼리의 경쟁 때문에 마진폭이 줄어들자 시계상들이 점차 떠나고 있다.
그래도 노점·상가를 합쳐 5백 개로 보고 한 상점의 하루 거래량을 최소 40만원이라 본다 하더라도 이「시계 골목」의 하루 총 거래액은 2억원에 달한다.
이 「시계골목」이 1년 중 가장 붐비는 달은 4∼5월과 10∼11월의 결혼 시즌.
연간 40만 쌍의 70%가 이 4개월 동안 식을 올리는데 이중 값싸고 품질 좋은 예물시계를 찾는「알뜰 신혼부부」들이 적지않게 이곳으로 몰려든다는 것이다. 예물용 국산 고급시계의 시중가격이 27만∼28만원 선인데 비해 이곳에서는 20만∼21만원이면 동질의 제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계골목」에서는 판매뿐 아니라 시계수리 전문점도 적지 않다. 재생 및 도금·부속교체 등 전문점이 분야별로 나뉘어 있고 값도 싸다.
이들 수리상들은 주로 「시계골목」의 종로쪽 입구에서 10여m 남짓 우측 편의 예지상가 건물에 밀집해 있어 이곳이 바로 서울시내 고장난 시계들의 메디컬센터가 되고 있는 셈이다.
13년 동안 이곳에서 시계수리를 해온 예공사의 한 직원은 『어떤 고물시계라도 이곳에 들어오면 두시간 만에 새 시계로 바꿀 수 있다』며 기술을 자랑했다.<박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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