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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골치아픈 '이라크 再建'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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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라크 사태가 계속 악화되는데도 이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요즘 거의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은 논외로 해도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나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처럼 이라크전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변명과 부인으로 일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라크전에 반대해 왔던 행정부 인사들까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유엔 통제 아래의 이라크 관리 방안을 내놓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명목상의 유엔 관리 방안은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유엔이 인정하는 '미국 지휘 아래의 다국적군 창설'을 부시 행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라크 관리.재건 주도권을 유엔이 승인한다면 터키.독일은 물론 프랑스까지 파병에 응할 것이고, 따라서 이라크 주둔 미군을 교체할 수 있게 된다는 계산인 것이다.

뜻대로만 된다면 오는 10월 이라크 전후 복구를 위한 국제원조회의에 소집될 나라들은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행정관이 "수백억달러"라고 했던 이라크 재건 비용을 지원할지도 모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지휘를 받는 군대를 창설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는 있지만 비현실적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의 관리.재건 권한을 양보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야심'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이라크전은 쉽게 끝날 것이고 비용도 별로 안 들 것이라는 당초의 전황 예측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전쟁은 '이라크 석유로 전비를 해결하고 어쩌면 남는 장사를 할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으로 시작됐다.

유엔을 통해 이라크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미국의 생각은 그 출발부터 문제가 있다. 전쟁을 반대했던 국가들에 이라크전의 뒤처리를 떠맡으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의 생각은 아미티지 부장관과는 다르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연례 외무각료 회의에서 "이라크 국민에게 지체없이 자치권을 넘겨주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며 "유엔만이 이라크 문제 해결에 정통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늙은 유럽'을 이끄는 국가들이 미국의 이라크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워싱턴의 '유엔 해법'과는 방향이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다.

이제 좀 껄끄러운 질문을 해 보자. 유엔이 주도하면(미국이 군 지휘권을 갖든 갖지 않든) 이라크 재건이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있는가. 물론 유엔이 승인한 다국적군이라면 이라크인들은 더 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다른 국가들이 인정할 가능성도 더 크다. 그러나 지금 가장 절박한 문제는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차원이 아니라 '어떻게 이라크의 치안과 질서를 회복할 것인가'다.

미군보다 다국적군 또는 유엔군이 이라크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를 정상화하는 데 더 기여할 것이라고 여길 근거는 없다. 사실 이라크인들은 유엔에 더 반대할 수도 있다. 많은 이라크인은 유엔을 '지난 10년간 이라크를 제재해온 미국의 대리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라크 대통령과 다른 사람들은 이라크인들이 겪는 고통을 걱정하고 있다. 존경할 만한 태도이지만 이는 현 상황을 초래한 이라크인들 자신의 책임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사담 후세인은 외부세력이 앉혀 놓은 독재자가 아니었다.

이라크 지식인들과 민중은 그의 집권을 허용했고, 많은 이라크인은 그에게 협력했다. 이라크인들은 1958년 혁명으로 왕권 체제를 무너뜨렸지만 후세인에 대항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국은 이라크가 미국과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했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이라크는 그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이 드러났다. 부시 행정부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이라크인들처럼 지금 미국이 초래한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채병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