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론] 국책사업 효율성 높이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새만금 사업.경부고속철도.서울외곽순환도로.경인운하 등과 같은 주요 국책사업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이익집단의 이의 제기나 시민의 가치기준 변화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정권이 바뀌면서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 제기에서 비롯된 것도 있다.

정책변화는 어쩔 수 없거나 자연스럽기도 하다. 애초 비합리적으로 결정된 사업도 적지 않다. 또 사업 성안 때 간단하게 보았던 환경문제가 중요성을 더해가고, 주민의 권리의식이 심화되면 정책의 내용과 추진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정책 집행과정의 혼선은 앞으로 더 심화될 것 같다. 정부의 전문성과 결정권에 대한 평판이 떨어지고 있어 이의 제기와 저항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혼선을 마냥 방치할 수만은 없다. 분명히 손실이 더 큰 상황이다. 연기.재검토.방치는 정부의 건전한 선택이 아니다. 중진국에서 시간관리와 속도는 치국책의 제1 요건이다. 상황이 지속되면 어떤 대형 사업도 추진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거론되고 있는 국책사업들은 개별적으로 달리 다루어져야 하겠지만, 이러한 사업을 현재의 형태로 추진하기까지는 수많은 전문가와 이해당사자, 그리고 정부부처가 수년에 걸쳐 고민하였다는 점을 상기하여야 한다.

추진과정에서 국민의 가치판단에 변화가 있었다면 기본 정책노선을 가능한 한 존중하면서 새로이 발견된 문제점을 보완하는 기본원칙을 세워나가야 한다. 이의가 제기된다고 기본틀을 바꾸기 시작한다면 전진은 불가능하다.

물론 대범한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최고의 공법은 물론이거니와 사업을 원상으로 돌릴 경우 발생하는 손실에 버금가는 추가 투자를 각오해야 한다.

아울러 정책 갈등에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 이해당사자가 정부에 제기하는 문제를 행정부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 행정부는 책임의 당사자가 아닌가? 그리고 한국의 관료제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기에는 아직도 경직성이 강하다.

이러한 활동에 이어서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권층에서는 정책노선을 구체화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정책노선이 분명해지면 국가적 관점에서 사회.경제적 갈등 해소책을 찾는 것이 쉬워진다. 또한 대통령의 결정과정에서 전문가의 위상을 높여나가야 한다.

이익집단이나 정치성향의 집단을 중시하면 공익을 구현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의 분야별 전문성 위에 국가적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집권층의 결단이 시급하다.

현재 제기된 문제를 이러한 차원으로 접근하면서, 앞으로 제기될 문제에 대응해 다음과 같은 방책을 생각해볼 수 있다.

먼저, 주요 국책사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국책사업 관리기본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 법에서는 주요 국책사업의 국회 동의, 정책의 기본구상.효과적 집행과 성과평가에 대한 기준 등과 정책 결정과정 및 변경에 관련된 절차적 규정을 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입법적 조치는 정권의 변경과 국회의 구성 시기가 서로 엇갈리므로 사업의 계속성을 확보하는 데 유리하고, 이해집단 간의 갈등을 타협과 협상으로 푸는 데 도움이 된다.

국책사업의 결정과 집행과정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도 필요하다. 먼저 사업을 조사하고 성안하는 데 필요한 예산을 대폭 높게 책정하여야 한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 단계에 필요한 예산을 사업예산의 10%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이해관계 집단을 구체적으로 파악, 적극 참여하게 해 대립적 견해가 모두 토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제대로 만들어진 정책에 대해서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역전하라는(U-turn) 요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장고한 후 결정된 정책은 단기간에 집행 완료하는 재정운용 전략이 필요하다.

선진국 중에서도 지혜로운 국가에서는 정책을 결정하기 이전까지는 장고를 하고 일단 결정하고 나면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부합하는 투자를 통해 단기간에 사업을 완료하는 정책관리 역량을 구축하고 있다.

李達坤 서울대 교수.정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