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시 "유엔, 다국적군 파병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unilateralism)가 갈림길에 서게 됐다. 부시 대통령은 23일 유엔총회 개막연설에서 회원국들에 다국적군 파병 및 이라크 재건 작업에 적극 동참해줄 것을 호소할 예정이다.

그는 프랑스 등 반전국들의 반발을 감안해 유엔에 이라크 신 헌법제정과 총선 등 향후 재건작업에 대한 감독권을 부여하는 양보조치를 제안할 것이라고 워싱턴 포스트가 22일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다른 나라들이 망설인다면 미국은 유엔 없이 행동에 돌입할 준비가 돼있다"고 선언한 뒤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전을 감행한 모습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유엔 역할 확대 양보할 듯"=부시 대통령은 21일 밤(현지시간) 폭스 TV와의 회견에서 "유엔이 이라크 신헌법 제정을 돕거나, 총선을 감독하는 등 이라크에서 보다 확대된 역할을 하는 것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도 "부시 대통령의 유엔 연설문 속에 이 같은 양보조치들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양보는 '미국이 지휘하는 이라크 다국적군을 유엔이 승인하는 대신 유엔이 이라크 재건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프랑스 등 반전국들의 주장을 제한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다.

이라크에서 '돈'과 '병력'이 아쉬운 미국으로선 한국과 터키 등 10여개국의 추가파병과 국제사회의 재정지원을 얻기 위해 유엔 안보리의 파병 결의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유엔 연설 뒤 반전국을 대표하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기로 한 것도 모두 미국의 유화조치를 예상케 하는 조짐들이다.

하지만 너무 갑자기 태도를 바꿀 경우 내부적으로 정치적 위기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게 부시 대통령의 고민이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의 이라크 재건과 관련, 어떤 실책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핵확산 차단 문제를 '유엔이 당면한 차후의 큰 도전'으로 규정,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강조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프랑스 "거부권 없다"=미국의 양보에 화답하듯 시라크 대통령도 미국의 새 파병결의안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Veto)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22일 뉴욕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에 반대할 뜻이 없다"며 "결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시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프랑스는 이라크 내 유엔의 핵심 역할뿐 아니라 이라크 국민 대표에 대한 주권 이양의 시한 및 일정표가 결의안에 포함돼야만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며 "이 내용이 포함되지 않으면 프랑스는 표결에 기권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결의안에 가장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프랑스가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배제함에 따라 미국이 제출한 안보리 파병결의안이 조만간 통과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금까지 다른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도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