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슛돌이들 독일서 "대~ 한민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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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팀이 글래스고를 찾았다. 뒷줄 오른쪽이 신철순 감독, 앞줄 왼쪽에서 둘째모자 쓴 이가 신상국 코치.

독일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1차 베이스캠프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29일(현지시간)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 한국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대표 10명과 임원 6명으로 구성된 '독일월드컵 희망원정대' 대원들이었다.

26일 한국을 떠난 이들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아일랜드 뇌성마비 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한 뒤 글래스고로 넘어왔다. 이들은 월드컵 기간에 한국 대표팀의 조별리그 두 경기(토고.프랑스전)를 현장에서 보며 응원단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유럽 각국 뇌성마비 대표팀과 친선 경기를 할 예정이다.

뇌성마비 축구 대표팀을 이끄는 감독 신철순(61)씨와 코치 신상국(32)씨는 부자(父子)사이다.

축구 명문 중동고와 건국대를 졸업한 신 감독은 선수 출신이다. 1970년대 사실상의 대표팀이었던 '양지'팀에서 뛴 적이 있으며, 고교 축구팀 감독으로 23년간 일했다. 그는 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을 위해 급조된 뇌성마비 축구대표팀의 감독을 맡으면서 장애인과 함께 하는 새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5개월간 합숙한 뒤 서울장애인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했어요. 대회가 끝나고 팀이 자동 해산하게 됐는데 이대로 흩어지면 다시는 만날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덜컥 '내가 팀을 맡겠다'고 나섰죠."

그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구성된 '곰두리 축구단'을 만들었고, '돈도 명예도 없는 대표팀 감독'을 19년 동안 맡아왔다.

신 코치는 중학생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곰두리 축구단 훈련장을 쫓아다녔다. 볼 줍는 심부름으로 시작해 선수가 모자라면 함께 뛰기도 했다. "처음에는 몸싸움을 하던 선수한테서 흘러내린 침이 몸에 묻으면 질겁을 할 정도로 결벽증이 심했어요. 지금은 몸에 난 종기를 스스럼없이 짜 줄 정도가 됐죠."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코치를 맡게 됐지만 축구 선수 출신이 아닌 그로서는 실력이 달렸다. 직장에 다니면서 장애인 스포츠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왼발.오른발을 다 잘 쓰기 위해 근육통을 앓을 정도로 훈련에 매달리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대학축구연맹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 것과 축구 실력이 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전국 8개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 중 최강인 곰두리 축구단은 매주 일요일 서울 상암동 한강시민공원 운동장에서 연습을 한다. 부산과 대전에서 매번 올라오는 열성파도 있다. 요즘은 부모들이 "재활 차원에서 축구를 시키고 싶다"며 아들 손을 잡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신 감독 부자는 "우리 선수들은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고, 어디 가든 자연스럽고 떳떳하게 행동한다"고 말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이 마음껏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전용구장을 만드는 게 이들 부자의 꿈이다.

글래스고=글.사진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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