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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 땅 아픈 설움 훌훌 털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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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서울 변두리 플라스틱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던 외국인 근로자 카말(42.우즈베키스탄)은 지난 7월부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심한 피부병을 앓았다.

공장에서는 "몸이 나은 뒤 다시 일하라"며 그를 내보냈지만 일도 쉬고 있는데 비싼 진료비를 내고 병원에 갈 여유가 없었다. 약 한번 써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이처럼 이국 땅에서 몸이 아파도 비싼 진료비 때문에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서초구와 서울시 의사회가 매주 일요일 오후 서초구 보건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진료 첫날인 지난 21일 소식을 듣고 수도권 일대에서 찾아온 1백5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들로 보건소 복도가 가득 찼다.

진료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진행되며 서울시 의사회 의료봉사단과 영동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고대구로병원.경희의료원 등 시내 31개 대형병원 소속 의사들이 매주 10~15명씩 돌아가며 맡는다.

서초구는 X-선 촬영과 치과 유니트 등 고가 진료 장비와 관리 인력을 지원한다. 이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내과.산부인과.안과.치과.이비인후과.정형외과 등 종합병원 수준의 다양한 진료와 무료 투약을 받는 것은 물론 정밀 진단이나 입원 치료가 필요한 경우 종합병원으로 옮겨져 2차 진료를 받을 수도 있다.

서울시 간호사회.방사선사회 등은 전문 인력을 지원하고 대웅.고려제약.유한양행 등 제약회사에서는 진료에 필요한 의약품을 향후 3년간 무료 공급하기로 했다.

이날 피부과 진료를 받은 카말은 "월급도 적게 받는데다 말이 통하지 않아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며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해주고 약도 무료로 받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기뻐했다.

건설현장에서 노무자로 일하는 중국 동포 이창휘(62)씨도 "팔다리 근육통이 심해 일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무료 진료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보건소 문을 열기 전부터 기다렸다"고 말했다.

조남호(趙南浩)서초구청장은 "서울시 의사회로부터 외국인 근로자를 효율적으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장소와 의료 설비가 필요하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보건소 건물과 설비를 무상 제공키로 했다"며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고된 일을 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서초구 보건소에서는 지난 3월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오후 7시 진료를 시작하는 야간진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1996년 마련된 장애인 무료 치과 병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신은진 기자<nadi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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