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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3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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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진문소는 공문서가 아닌 일지 형식으로 무대 살인에 관한 수사기록을 은밀히 작성해 나갔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 되는 시신이 없으니 채태사 말마따나 관련 증인들이 시치미를 떼어버리면 재판거리도 되지 않을 사안인지도 몰랐다. 검시관 하구도 정식 재판이 벌어지면 술주정을 하면서 늘어놓은 이야기를 절대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뗄 것이 분명하였다.

그 무렵, 청하현에서 또 한 가지 고소 사건이 올라왔다. 사람들에게 음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는 죄목으로 이풍연이라는 소설가가 청하현 현청 주보인 화자준의 고발로 잡혀온 것이었다. 소설가(小說家)는 원래 전국시대부터 유가.묵가.법가.도가.명가.음양가.종횡가.농가.잡가 다음에 위치하는, 다시 말해 맨 꼴찌에 해당하는 가(家)였다.

소설가까지 넣게 되면 십가(十家)라 부르고, 소설가를 빼게 되면 나머지 아홉을 구류(九流)라고 불렀다. 그러니 유가나 도가 같은 데서 얼마나 소설가를 업신여겼겠는가.

장자는 자신의 저서 '외물편'에서 소설가를 가리켜 '자질구레한 말들을 꾸며 현령에게 알려지기를 구하니 대도(大道)와는 거리가 먼 자들'이라고 힐난하였고, 순자 역시 '정명편'에서 소가진설(小家珍說)이라고 하여 소설가를 조롱하면서 '보잘것없는 자들이 꾸며낸 말로 하찮은 것들을 얻으려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군자는 소설가가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소설가들을 세상에서 없애버려서도 안 된다고 하였다.

소설가들은 인쇄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기에는 옛날 이야기나 자기가 지어낸 이야기들을 가지고 저잣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불러모아 들려주었다. 글이 아니라 말로 긴 이야기를 하려니 자연히 사람들의 흥미를 돋워 지루하지 않게 하는 기술이 발달하였다. 그런 기술 중에 가장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것이 바로 농담조의 음담패설이었다. 사람들이 이야기가 길어져 지루하게 여긴다 싶으면 그런 음담패설을 슬쩍 늘어놓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이었다.

이번에 잡혀 온 이풍연도 그런 식으로 음담패설을 늘어놓다가 정도가 지나쳤는지 고발까지 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풍연은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진정서를 써서 부윤에게 올렸다. 그 대강을 보면 다음과 같았다.

'인간에게는 그 진실을 들여다 보기를 크게 두려워하는 두 가지 대상이 있소. 그것은 성(性)과 죽음이오. 진실을 들여다 보기가 두려운 대상들은 농담거리로 삼아버리는 버릇들이 인간에게 있소. 성에 관한 농담을 흔히 음담패설이라고 하오. 그러나 그 농담 속에는 일말의 진실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오.

그렇게 음담패설로 잠시 웃음을 터뜨리면서 성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고 있는 와중에 어떤 고지식한 사람이 눈에 힘을 넣고 정색을 하며 큰소리로 어디서 음담패설이냐고 꾸짖어버리면 그 자리는 참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되고 마오.

하물며 소설가가 인생살이에 지친 사람들을 잠시 재미있게 해 주기 위해 늘어놓는 성에 관한 농담을 가지고 목에 힘줄을 세우는 일은 그야말로 도로(徒勞)일 뿐이오. 원래 대도(大道)와는 거리가 멀다 하여 멸시하는 투로 붙인 이름이 소설가인데, 그런 소설가에게서 무슨 대도를 구하겠다고 소설가를 꾸짖고 소설가 주위에 모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어온 사람들을 무안케 한단 말이오.'

진문소가 진정서를 읽어보니 궤변 같기도 하고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하긴 소설가가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은 음담패설보다도 더 심한 음란한 짓거리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세상인데 그런 음담패설은 차라리 애교스럽다고 해야 할 판이었다.

이풍연을 고발한 화자준이라는 인물은 어떠한 인물인가. 청하현 관리들의 동태를 꿰뚫고 있는 진문소로서는 화자준이 서문경 못지않은 엽색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몸으로 음란한 짓을 일삼는 자가, 입으로 음란한 말을 한 자를 고발한 셈이었다. 입도 몸의 일부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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