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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기 왕위전]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126의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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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4국
[제6보 (125~149)]
黑. 왕 위 李昌鎬 9단 | 白. 도전자 曺薰鉉 9단

패싸움을 잘하려면 계산에 능해야 한다. 패싸움이란 변화를 일으켜 서로 뭔가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125로 패를 따냈을 때 曺9단은 다시 진퇴양난의 기로에 선다. 패싸움을 계속하자니 상대가 126쪽을 팻감으로 활용하는 게 너무 아프다. 흑이 126으로 두는 즉시 귀는 수가 난다. 백이 받아줘도 한 수에 잡히지 않는다. 그런 수가 팻감까지 된다면 보통 배아픈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참고도' 백1로 두어 중앙집을 짓는 것도 도무지 채산이 맞지 않는다. 백9까지 이곳 저곳 흑의 출구를 봉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집을 잘 세어보면 대략 25집 정도다. 한데 흑이 좌상귀에서 살아버린다면 그 자체가 20집. 흑은 그러나 단순히 사는 것이 아니라 A의 절단을 노리며 약점을 찔러올 것이다.

이 약점 때문에 몇집을 더 뜯긴다고 가정하면 백의 중앙은 결국 공배가 되고 말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등하던 曺9단은 126으로 두어 귀를 깨끗이 잡아버렸다. 승부를 떠나 이곳을 팻감으로 쓰는 것만은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변은 흑이 129로 한 수 더 두게 되었고 중앙에 걸었던 백의 포부는 전망이 어두워졌다.

설상가상으로 팻감마저 부족했다. 흑이 145로 때렸을 때 백은 다음 팻감을 찾기 어려워졌다. 이때 냉정하게 생각했더라면 백은 B로 물러서야 했다. 이렇게 물러서도 중앙은 어느정도 집이 된다. 그 집으로 견디며 계가로 가야 했다.

좌변에 둔 146은 프로들이 금기로 여기는 손해 팻감. 이 수를 본 李9단은 149로 조용히 물러섰다. 손해패는 자해행위다.

백이 스스로 피를 흘리고 있으므로 흑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물러서도 충분하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130.133.136.139.142.145.148은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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