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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원의 사이언스&] 페로몬서 과학수사까지 … 어른을 위한 ‘과학관 파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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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 달에 하루, 저녁 6시가 되면 닫혔던 과학관의 문이 은밀히 다시 열린다. 드레스 코드 ‘파스텔’에 맞게 옷을 갖춰 입은 120여 명의 성인이 국립과천과학관 자연사관으로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커다란 공룡 뼈와 동물 박제가 가득했던 2580㎡의 환한 과학관은 은은한 조명으로 옷을 갈아입고 경쾌한 음악도 흘러, 마치 클럽이나 바를 연상시킨다. 전시장 한 켠에는 언제든 먹고 마실 수 있는 와인과 핑거푸드가 놓여 있어 분위기가 더욱 산다. 이 공간은 곧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얘기를 나누는 왁자지껄한 토크쇼 현장으로 변했다. 국립과천과학관이 주최한 객석 참여형 ‘달밤 과학 파티(Moon Night Science Party)’의 풍경이다.

과학관들 성인을 위한 변신 #수면의 과학 풀고 탈원전 토론 #와인·핑거푸드가 있는 토크쇼도 #학생 프로그램도 체험위주 강화

지난 8월 국립과천과학관이 주최하는 ‘달밤 과학파티’ 참여자들이 자연사관에 있는 SOS(Science on Sphere)을 감상하고 있다. 파티는 만 19세 이상 성인만 참여할 수 있다. [사진 국립과천과학관]

지난 8월 국립과천과학관이 주최하는 ‘달밤 과학파티’ 참여자들이 자연사관에 있는 SOS(Science on Sphere)을 감상하고 있다. 파티는 만 19세 이상 성인만 참여할 수 있다. [사진 국립과천과학관]

과천과학관은 지난 8월 18일을 첫 시작으로 11월까지 매달 셋 째주 토요일 저녁,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형식의 파티·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 어린이는 참여할 수 없는 성인 맞춤형 과학 파티로 19세 이상만 참가 가능하다. 1회 행사에서는 ‘가짜과학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로 혈액형 성격설 과연 맞을까·파티장 곳곳 페로몬 향수를 뿌린 사람 찾기·달밤 북클럽 등 코너가 진행됐다.

미세전류로 남성 성기능을 강화한다는 가짜 의약품에 대한 궁금증도 주제로 등장했다. 2회 ‘꿈 좀 꿔봤니’에서는 수면의 과학을, 3회 ‘내가 연애 잘(못)하는 이유’에서는 사랑의 과학을 풀어냈다. 모두 20~40대 성인들이 과학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사회 전반으로 과학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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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익스플로라토리움 과학센터 등에서 파견 연구를 경험한 유만선 국립과천과학관 연구원은 “현지 관계자들은 전시를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보조 매체로 인식하고 있어 놀랐다”며 “익스플로라토리움 역시 ‘애프터 다크(After Dark)’라는 심야 과학 파티를 개최하는데 소위 ‘힙한’ 젊은이들 1000명 이상이 모여 CCTV와 안전·탈핵 등 깊이있는 과학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문화가 있다”고 밝혔다. 과천과학관 역시 이런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해 관람 위주의 전시 문화에서 탈피하는 등 고급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한민국 국공립과학관이 변화하고 있다. 기존의 과학관이 일년에 한 두번 학생들이 방학숙제를 하러 가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성인들이 ‘과학문화’를 형성하고 즐기기 위한 곳으로 체질 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노원구에 있는 서울시립과학관은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나 있을 법한 ‘연구단’을 꾸렸다. 김준 서울대 생명공학부 박사가 진행하는 ‘선충 연구단’이 그것이다. 김 박사는 “성인들이 과학을 취미로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전무하다”며 “과학관 측과 사전 협의해 개인적으로 연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SNS에 띄웠는데, 곧바로 정원 15명이 채워져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선충을 채집하고 과학관이 제공하는 현미경·유전자증폭(PCR)기기 등 전문 장비를 이용해 DNA를 추출·분석한다.

과학관 운영

과학관 운영

학생을 위한 과학 콘텐트의 질도 향상되고 있다. 서울시립과학관 교육지원과 유정숙 박사는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4개의 분야로 꾸려진 ‘테마 실험실’도 있다” 며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20명 단위로 학생들과 함께 방문해, 과학관이 제공하는 장비와 커리큘럼으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수업의 60%가 수학·과학인 ‘과학중점 고등학교’라 하더라도 예산은 한정돼 있는 만큼, 과학관이 보유한 실험기구들을 이용해 수업하는 교사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시립과학관에는 광물을 분석할 수 있는 편광 분석기, 입에 있는 구강 상피 세포로 DNA를 분석하는 데 쓰이는 원심분리기 등도 갖추고 있다. 중학생들은 프로파일러처럼 혈흔 분석을 통해 범인을 찾는 과학실험도 경험할 수 있다. 예산 규모는 과천과학관의 10분의 1수준이지만 서울 전역에서 학생들이 방문하고 있는 이유다.

초등학생·미취학 아동을 위한 과학 콘텐트 역시 강화됐다.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중앙과학관과 서울 종로구의 국립어린이과학관은 아이들의 거대한 놀이동산이다. 대부분의 구성이 체험 위주다. 아이들은 뛰고 던지고 때려보며 과학을 몸으로 느낀다. 어린이과학관 1층에 있는 감각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다. 현장에 비치된 전자드럼·피아노를 연주하면 액체자석이 음파의 높낮이에 따라 다른 높이로 반응한다.

27일 6살 딸, 4살 아들과 함께 중앙과학관 과학기술관을 방문한 김영훈(37)씨는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야구공을 던졌다. 야구공의 공기저항을 체험하게 해주는 스크린 야구장이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들이 어려 과학에 대해 모르지만, 직접 체험했던 재밌는 기억이 과학에 아이들을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중앙과학관은 인근에 위치한 출연연 출신의 은퇴 과학자들이 ‘자문 과학자’로 봉사활동을 하며 해설과 자체 수업도 진행하고 있어 더욱 의미가 있다. 2006년 한국천문연구원 기술지원그룹장으로 근무했던 자문 과학자 김광동(68) 박사는 “과학자는 후진을 양성하고 과학을 홍보할 의무가 있다”며 “은퇴 후에도 전문성을 살려 학교에 과학 강연도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기존 국립과학관에서 교육 업무를 진행하는 위촉계약직 과학 교육자(SE·Science Educator)들이 내년부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는 등 과학관은 과학인들의 일자리 양질화에도 일조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종합 국립과학관은 전국에 총 6개로 연간 방문객만 556만8000여 명이며 직원은 총 963명이다.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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