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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5. 죽음에 대한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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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필자가 태어나서 여학교 시절까지 자란 전북 옥구군(현군산시 옥구읍) 대야들녘.

의사는 늘 죽음 곁에 있다. 병원에서 주검을 보는 것 역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죽는 것에 대해 초연할 만한데도 아직 나는 죽음이 두렵다. 사람들은 "힘들어 죽겠다" "아파 죽겠다"는 등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 병원 직원들도 못하도록 한다. 사람을 살리는 곳이 병원인데, 직원들이 '죽겠다'를 연발하면 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고향 우리 집 근처에 순이라는 소꿉친구가 살았다. 어느 해 여름, 우리 동네에 장질부사(장티푸스)가 돌면서 희생자가 한두 명씩 생기기 시작했다. 위생에 대한 개념도, 예방접종도 없던 시절이어서인지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희생됐다.

어느 날 "순이가 죽었다"는 말이 삽시간에 돌았다.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뒷산 고목 뒤에 서서 멀찌감치 보이는 순이네 집을 내려다봤다. 친구의 주검은 너무도 초라했다. 애장이라고 하는데, 거적에 돌돌 말린 무엇이 지게에 실려나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지켜본 나는 "순이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엄마.아빠도 없는 곳에 혼자 있어야 할 거야"라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급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이 가져다준 충격은 꽤 오랫동안 내 머리 속에 머물렀다. 죽음을 막연히 두려운 것쯤으로 알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운 사건은 또 있다.

나와 언니는 나무를 잘 탔다. 특히 큰 소나무와 감나무가 많은 뒷산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어르신들은 "감나무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면 죽는다"는 말을 곧잘 하셨다. 감나무는 높기도 했지만 나뭇가지가 잘 부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감나무 위에서 놀다가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나무에서 미끄러지면서 몸이 한 바퀴 반을 돌아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되는데, 그 짧은 시간에도 어린 나이에 '이젠 죽는구나'하는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기억이 있다.

그날 밤 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진땀을 쏟고, 베개를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언니는 또 다른 고민거릴 내게 던져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는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신기하다는 듯 곧잘 전해줬는데 어느 날 대뜸 "길여야, 너 지구가 둥근 거 알아?"라며 말을 꺼냈다.

언니는 "지구는 항상 빙글빙글 돌고, 그 지구 밖에는 우주가 있데, 그런데 그 우주는 끝이 없데"라며 "그런데도 사람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니의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나에겐 또 다른 근심거리가 생겼다.

"지구가 돌다가 내가 아래쪽에 있을 때 만유인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지? 우주는 끝이 없다는데 어디까지 떨어져야 하나?"하는 걱정이었다.

어릴 때 유난히 '죽음 공포'를 많이 겪은 나는 지금도 매사를 죽음 반대 편에서 생각한다.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밝은 면을 사랑하고, 환자에게 한마디 말을 건넬 때에도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노력한다.

이길여 <가천길재단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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