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라이 캐논 회장 "돈으로는 사람 마음 살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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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71.사진) 캐논 회장은 캐논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낸 실력파 경영인이다. 그가 이젠 캐논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일본 재계 전체를 총지휘하게 됐다.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회장의 뒤를 이어 24일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에 취임한 것이다. 1948년 구 게이단렌 출범 후 자동차.철강.전력 등 전통 산업이 아닌 첨단기술 업종에서 대표가 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래서 그의 게이단렌 회장 취임은 일본 산업구조의 변화를 상징한다고도 한다.

◆'이노베이트 일본'=게이단렌의 노선에 큰 변화는 일단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타라이 회장은 취임 직후 '이노베이트 일본'을 내세웠다. 오쿠다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개혁과 변화를 일본 재계의 화두로 재확인한 것이다. 미타라이 회장은 "일본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질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를 위해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식 고용제도는 유지=미타라이 회장은 일본식 종신고용 시스템을 고집한다. 장기고용이야말로 호흡이 긴 기술 개발에 적합한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종래의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그대로 답습하는 건 아니다.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줌으로써 근로자의 창의력을 극대화하는 인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능력이 없다고 내보내진 않지만, 실적에 따른 보상은 확실히 해준다는 것이다.

이는 오쿠다 전 회장의 '인간 존중' 경영과 맥락을 같이 한다. 미타라이.오쿠다 회장은 모두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전도사로 평가되고 있다. "돈으로 인간의 마음도 살 수 있다"며 미국식 성과주의를 신봉하는 젊은 벤처 경영인들과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그의 경영은 한때 "일본의 구조개혁을 더 늦출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도요타와 캐논이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최근엔 일본식 고용 시스템의 저력이 새롭게 인정받고 있다.

◆정치권과는 거리 둬=오쿠다 전 회장과 달리 미타라이 회장은 정치권과 그리 가깝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타라이 회장은 "정치권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오쿠다 전 회장이 고이즈미 총리의 경제 자문을 맡고, 정치헌금을 부활시켜 자민당을 지원하는 등 정치권과 가깝게 지내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를 두고 일본 재계 일부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쿠다 전 회장은 정부여당의 정책에 재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반영시켰지만 미타라이 회장은 정치권과 그 정도의 관계설정이 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적이 말해주는 경영인=미타라이 회장은 95년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선택과 집중'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액정 디스플레이와 광디스크, PC 사업에서 과감하게 손을 떼고 프린터.카메라.반도체 등에 집중 투자한 것이다. 또 일본식 종신고용을 유지해 종업원들의 애사심을 고양시키면서도 미국식 경쟁 시스템을 도입해 조직의 효율성을 높였다. 그 결과 미타라이 회장 재임 10년간 캐논의 매출은 80%, 순익은 600%나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은 3조7451억엔, 순익은 3840억엔. 6년 연속 사상 최고 이익을 갱신했다. 그는 또 고부가가치 제품은 일본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 일본 기업의 'U턴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게이단렌=2002년 게이단렌과 닛케이렌(日經連)이 통합해 출범한 일본 최대의 경제단체다. 1500여개사를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일본 재계의 총본산으로 불린다. 막대한 정치헌금을 바탕으로 정치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해엔 일본삼성이 한국기업으론 처음 가입했다.

미타라이 회장은…

▶1961년 주오대 졸업,

캐논 카메라(현 캐논) 입사

1979년 캐논USA 사장

1981년 캐논 이사 겸 캐논USA 사장

1995년 캐논 사장

2006년 5월 일본 게이단렌 회장 취임

▶취미:골프(핸디 14)

▶가족:5형제 중 막내, 아버지.형제들은 모두 의사

캐논 창업자 미타라이 다케시의 조카, 1남1녀

▶좌우명:생각은 신중하게,

행동은 신속하게(熟慮斷行)

▶기업경영:재무.개발은 글로벌로,

인사는 일본식으로

◆주요 인맥 ▶1935년생:니시무로 다이조 도쿄증권거래소 사장, 미야하라 겐지 스미토모상사 회장 ▶주오대 동문:스즈키 도시후미 세븐&아이 회장 ▶미국 주재 시절: 잭 웰치 전 GE회장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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