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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산층-세계 제1국부 "빛좋은 개살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일본사회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왔던 중산층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높은 소득수준에 있지만 실제로 엄청난 주거비와 자녀교육비등으로 상대적 빈곤감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즉 높은 국민소득에 비해 낮은 실질소득, 막대한 국부에 비해 보잘것없는 개인적 부에서 오는 괴리감이 팽배해 감에 따라 중산층의 불만이 높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88년도 국민생활자서는 일본인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고 있다.
주택보유자와 무주택자. 일본의 땅값은 해마다 엄청나게 치솟아 웬만한 중산층들도 섣불리 짐을 살 엄두를 못낸다.
집을 사려면 막대한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만큼 생활에 주름이 온다.
반면 집이 있거나 주식투자도 할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럽제 가구나 호화 화장실을 구비하는 것은 보통이고 해외여행도 즐긴다.
도쿄 동부변두리의 후나바시에 살고있는 세 자녀를 둔 44세의 한 가정주부의 연간가계수입은 약3천8백만원(7백만엔). 이는 평균소득을 약간 웃도는 액수다.
이 주부가 살고있는 15평짜리 아파트는 11년전 4천5백만원 했으나 지금은 두배로 뛰었다. 20평짜리를 마련하려면 자신의 아파트 값의 배인 1억7천5백만원을 줘야한다.
또 장차 자녀들의 대학입학에 대비하려면 돈을 그리 헤프게 쓸 형편도 못된다. 따라서 이 주부는 각종 부조금도 줄이고 남편용돈도 깎는 등 더욱 알뜰한 새해살림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그녀는 『누가 아파트를 샀다더라는 따위의 얘기를 들을때며 자신은 전혀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며 『심지어 사회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푸념한다.
경제기획청의 한 의식조사보고서에 따르며 조사대상중 4분의3이 지가폭등에 따른 실질소득감소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으며, 지난10년간 개인별 소득면이나 부동산취득면에 있어서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도 50%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부동산 소유여하는 곧 계층을 만들고 여기서 비롯된 위화감은 날로 팽배해져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또한 국부와 개인적 부와의 거리감도 크다.
「아카바네·다카오」기획청 차관은 『명목소득은 세계적으로 1, 2위를 다투지만 실질소득은 이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고 시인하고있다.
84년이래 자기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점점 줄어 지난해엔 겨우 50%에 머물렀다.
한 교수는 『일본 사람들이 바다에 가까이 살면서도 해변에 놀러다니지 못하는게 사실』이라면서 특히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이들은 결코 일본보다 경제력이 나은게 없는 유럽인들의 생활상과 비교하고 곧잘 좌절하기 일쑤다.
명목소득만 높았지 긴 근로시간, 높은 물가, 형편없는 하수도시설, 부족한 공원 등 녹지시설의 미비에서 오는 불만이 누적되고 있음이 이 백서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의 생활수주에 관해 저술활동을 해온 상지대의 「이노구치·구니코」교수는 『일본의 사회적 안정이나 정치문화 등은 모두 든든한 중산층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최근 나타나고 있는 계층간 위화감이나 괴리감은 건전한 근로의욕과 충성심을 해치고있다』고 경고한다.
정부가 토지매매세를 올리고 간척사업을 펴 땅값이 조금 내리기는 하였으나 서비스산업 및 금융산업의 번창과 함께 끊임없이 도쿄로 몰려드는 절대인구가 줄지 않는 한 실질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일본, 특히 도쿄에 있어서 가위 살인적인 땅값이 내리지 않는 한 수치상 세계제일의 국민소득은 무주택자나 재산이 있다해도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는 빛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일본중산층의 고민이다.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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