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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인간·돼지 키메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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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고대와 중세 의학에서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은 돼지다. 죽은 사람의 몸에 칼을 대는 게 금기였던 터라 인체 해부를 돼지로 대신했다. 장기 구조와 기능이 사람과 가장 유사하다고 여겨서다. 2세기 로마시대 ‘의학의 황제’ 갈레노스가 돼지를 이용해 정립한 해부학이 150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했을 정도다.

이게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다. 2012년 한국이 포함된 국제 컨소시엄 연구진이 완성한 ‘돼지 유전체 지도’만 봐도 그렇다. 조직과 장기 모양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경우 사람과 돼지가 95% 유사하다. 비만·당뇨·파키슨병·알츠하이머병 같은 질병의 유전변이도 같다. 게다가 네이처에 실린 돼지 유전체 지도 발표 논문에선 “사람과 돼지는 80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고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표현한 ‘돼지와의 교배와 인류의 탄생’ 장면이 묘하게 겹쳐지는 대목이다.

이런 돼지의 몸에서 사람의 장기를 길러 이식하려는 시도가 ‘현실화’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일본 정부가 그제 돼지의 수정란에 사람의 인공만능줄기세포(iPS)를 결합한 ‘키메라 배아’를 돼지 자궁에 이식해 새끼를 낳게 하는 연구를 승인했다. 사람의 장기를 지닌 ‘인간·돼지 키메라’를 만드는 길이 열린 셈이다. 키메라는 상이한 두 개의 유전체로 구성된 동물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자의 머리, 양의 몸통, 뱀의 꼬리를 가진 괴수 이름이다.

인간·돼지 키메라는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와 가족에겐 희망의 빛이다. 문제는 생명윤리 논란과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키메라 배아 성장 과정의 오류로 사람과 동물의 구별이 모호한 생물이 태어날 가능성에 대한 염려 탓이다. ‘말하는 돼지’ ‘두 발로 걷는 돼지’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일 터다. 일본 정부가 키메라 배아의 사람 자궁 이식이나 키메라끼리의 교배를 계속 금지하는 등 제한을 한 데에도 이런 우려가 깔려 있다. 한국은 동물 수정란에 인간 줄기세포를 넣는 연구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상상력의 산물인 신화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빠지지 않는 게 반인반수(半人半獸)다. 사람의 몸에 머리가 소인 중국의 신농과 하반신이 말인 그리스 신화의 켄타우루스가 대표적이다. 반인반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신성과 풍요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래의 ‘인간·돼지 키메라’는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어야 한다. 괴수여선 곤란하다. 키메라 연구 진전이 못 미더운 공연한 기우이길 바랄 뿐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