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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셀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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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한국에 ‘바이 코리아’ 열풍이 불었던 것은 1999년이었다.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한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자 외국인들은 돈을 싸 짊어지고 한국으로 몰려들었다. 주식·채권·부동산은 물론 기업 직접투자까지 외국인 자금이 물 밀듯 쏟아져 들어왔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우량주를 닥치는 대로 쓸어 담았다. “한국 기업이 외국인 손에 다 넘어간다”는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였다. 한국 경제의 몸값이 상종가를 쳤던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 기업은 부채비율을 낮추고 경영혁신에 나서 경쟁력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었다. 조선·철강·자동차 등 주력 산업은 물론이고 반도체·전기전자를 앞세운 첨단 정보기술 산업에서도 일본을 앞지를 만큼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당시 위기 극복을 지휘한 김대중 정부는 기술혁신과 창업 열기에 불을 지폈고 장외시장에 있던 코스닥을 거래소와 맞먹는 핵심 주식시장으로 끌어올렸다. 이 모든 것이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와 혁신 정책이 불러온 결과였다.

그때를 돌아보면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전 세계가 호황을 누린 끝에 미국발 경기 조절이 시작되면서 그간 ‘나홀로 불황’에 빠졌던 한국에  ‘셀 코리아’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 광풍은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경제를 좌우하는 구조적·경기적·정책적 요인이 죄다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외국인 투자자들이 높게 평가했던 한국의 산업구조는 낡고 무뎌져 있다. 조선·해운에 이어 우리 경제의 기둥이던 자동차는 생태계 자체가 휘청거리고 있다. 유일한 버팀목은 반도체뿐인데 내년부터는 중국이 양산에 나서면서 우리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밖에서는 퍼펙트 스톰이 몰아치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중 무역전쟁의 포성이 날로 커지면서다. 미국이 “기술 탈취와 무역 적자를 묵과하지 못하겠다”면서 중국의 목을 조를수록 한국의 입지도 좁아진다. 중국에 기댄 한국의 수출의존도가 26%에 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국의 성장 둔화로 한국은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처지다.

여기에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은 셀 코리아에 기름을 붓는다. 최저임금·근로시간을 획일화해 기업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어서다. 그래도 구조개혁·노동개혁을 통해 혁신성장을 강화하면 살아날 구멍이 있을 텐데 이 정부는 반(反)시장적 정책실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재정을 쏟아붓는 공공부문 알바 모집도 그런 맥락이다. 셀 코리아 불안이 확산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