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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 결제방법 확인 후 교역을-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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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최근 중국·소련 및 동구권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체제개혁 및 개방정책의 추진에 힘입어 우리 정부도 북방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이미 합작투자의 형태나 직접 교역을 통해 공산권 지역에의 진출을 시도하고 있으며, 바야흐로 동서교역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지게까지 되었다.
보도에 의하면 현대건실과 소련의 합작투자사업에 관한 의향서가 교환되고, 업계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분이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 주위에 소련이나 중국을 다녀온 업계 인사들이 많고, 아직도 다녀오지 않았느냐는 농담까지 나누게 되었다. 대단한 충격이며 급속한 변화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시대적 발전을 배경으로 한국기업이 사회주의국가에 진출하는 경우에 유의하여야 할 사항을 몇 가지 적어 보기로 한다.
첫째로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정치상황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나 공산당 1당 중심 및 명령적 관료제도에 의한 획일적 정치제도라는 점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몇몇 국가들에서는 정책집행의 경직성과 함께 관료적 부패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진출대상 국가의 특징적 정치상황 및 행정체계를 미리 조사. 연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동구권국가들은 사회주의 경제체제, 즉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체제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여기에 내재하는 비효율과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국민소득수준이 낮아 인구에 비하여 그 시장규모가 작고 외화 부족으로 대금 결제나 배당금의 송금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도 확인하여야 한다. 이에 대응하여 물물교환 등 구상무역의 형식을 취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한다.
대부분 사회주의 국가의 기업은 국영기업이고, 또 그 생산·판매와 구매는 국가계획에 따르며 이에 따라 진출기업은 적기에 적정량의 물자를 조달하는 것이 상당히 불확실하게 된다.
세째로 사회주의 국가들은 장기집권에 대한 정치적 반발, 비사회주의적 요소 도입에 대한 경제적 반발, 그리고 보다 향상된 생활방식을 요구하는 신세대의 반발 등으로 사회적 불안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요소들은 진출기업의 위험도를 확대시키고 있으며, 따라서 진출 후에도 이러한 사회 상황을 예의 주시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노사관계에 관한 인식의 차이는 덮어두더라도 대체로 사회주의 국가의 근로자는 노동생산성이 낮은 편이고 경영자의 능력도 확실히 평가되지 않고 있으며, 상호 문화적인 차이에 따른 오해의 소지를 감안하면 노사분쟁의 기회가 매우 많다고 할 것이다. 지출기업과 현지인과의 언어를 포함한 문화적 저촉은 불필요한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따라서 지출대상국의 역사적·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고 이에 따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 소련· 북한 모두가 합영법으로 알려진 외자도입법을 최근 제정한바 있다. 그러나 외자의 유입이란 단순한 법제의 개편에 따라 즉시 증감되는 본성을 갖는 것이 아니다. 환경적인 요소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인데 환경적 요소의 개선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일이 걸리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동구권 진출을 법적 측면에서 본다면 흥분하기 보다는 냉정을 찾고 내재된 위험 요소를 진단할 필요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동구권 진출이 상품의 교역이나 자본투자의 형태로 이루어질 터인데, 먼저 교역과 관련해 본다면 동구권국가의 결제수단과 방법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일회적인 수출계약이나 보다 진전된 형식의 대리점 계약을 체결하여 진출하는 경우에도 거래대금의 결제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또한 수출과 관련한 위험을 비용으로 전환하기 위해 우리 수출보험법에 규정되어 있는 수출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흔히 해외투자를 고려함에 있어서는 해당국가의 위험도를 분석하고 투자활동이 자유로운지, 투자보장제도가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그중 출입국관리의 문제, 외국인 경영참여의 한계, 기업활동의 자유, 투자보장협정 및 이중과세 방지협정의 유무, 원본·과실의 송금보장여부와 외환사용의 자유 등을 점검해야 한다.
소련의 합영법은 외국인 투자가가 합작법인 주식의 49%를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으며, 중국법은 합영법에 의하든, 합작계약의 인가에 의하든 일정기간 내에는 외국인 투자가가 철수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 다분히 민족주의적이며 외국자본을 적대시 하는 기초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밖의 동구권 국가도 보편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교역 및 투자와 관련해 우리 정부는 제도의 개선보다는 기업가의 창의적 노력에 맡기고 있는 것 같다. 정책의 변화를 분명히 해 대공산권 지출에 혼선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하며 필요한 법령도 개정해야 한다. 외국환 관리법·외국환 관리규정·수출보험 관계법령을 개정하여 기업의 활동을 지원하는 한편 공산권국가에서 그 통화의 태환 불능, 전쟁·사변이나 국유화 조치 등으로 인한 손해를 입게된 때에 대비해 해외투자보험제도가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정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동구권 진출이 과열되는 분위기인데 이는 고무적인 일이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 너무 성급한 결정에 이를 우려가 있는 것이다. 보다 신중한 자세로 점검사항을 충분히 파악 검토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는 일이 현 단계의 한국기업에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싶다.

<약력>
▲워싱턴대 법학박사
▲경제기획원 외자계약심의관
▲청와대 경제비서관
▲워싱턴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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