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면돌파론」에 야 엉거주춤|중간 평가 궤도수정의 속셈과 야권 반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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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년정국의 최대현안으로 꼽히는 중간평가를 둘러싸고 여야간 공방이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때 꽁무니를 빼던 정부·여당이『조기에 신임과 연계해 실시』(이종찬 사무총장)하겠다고 강 공으로 돌아서고, 오히려 야당 측이『광역자치단체장선거부터 실시하자』(이상수 평민당 대변인)고 후퇴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어찌 보면 여-야 4당 모두에 혹 같은 존재인 중간평가를 놓고 4당 모두 이해득실의 주판알을 부지런히 튕겨 대고 있는 중이다.
정부·여당의 경우 청와대 쪽은 내막 적으로 중간평가와 대통령신임연계부가가 기본원칙이고 따라서 신임과 연계되는 국민투표 방식 같은 것은 피하겠다는 게 속셈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민정당을 중심으로 조기 정면 돌파 론이 심심찮게 등장하더니 급기야 이 민정 총장이 지난28일 신임연계로 조기실시를 추진할 뜻을 던짐으로써 여권의 궤도수정인지 단순한 개인의견인지 아리송한 채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총장의 속초발언이 있자 곧바로 김윤환 총무가 『5공 청산에 여야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간평가와의 연계가 불가피하며 중간평가가 실시될 경우 신임과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며 뒷받침하고 나섰고 오는 2월4일 박준규 대표위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형식으로 보다 구체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개인의견차원만은 아닌 듯 하다.
특히 이제까지 비교적 중간평가에 대해「미온적」이던 청와대의 분위기가 정면돌파 쪽으로 바꿔는 조짐도 없지 않아 민정당의 이같은 움직임이 단순히 대야 엄포용이라고 만은 볼 수 없는 것 같다.
일부에서는 이같은 궤도수정이 현안인 5공·광주특위 조기종결방침에 대해 야당 측이 호락호락 들어 줄리 만무한 만큼 초 강경 공세를 취함으로써 야권을 궁지에 몰아 넣은 뒤 협상을 시도하려는 전략적 카드로 중간평가를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중간평가직후 민정당 의원 총 사퇴→국회해산→총선 재 실시와 정계재편까지 구상하고 있다는 등 냉기류를 흘려 보내는 등 일련의 움직임이 대야엄포용일 가능성이 더욱 높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종찬 총장 등은『엄포용인지 두고 보라』『대통령에게 건의해 실현되도록 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히고 있고 이를 당내의 정면돌파 승부 론이 뒷받침하고 있다.
때문에 이런 의견이 확산되면 실제 정면돌파로 전략수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시각도 만만찮다.
중간평가가 이미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된 만큼 어떤 형식으로든 실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청와대측 의견이다. 따라서 이왕 실시할 수밖에 없다면 야권이 우왕좌왕 할 때 후딱 해치우려 들것이란 관측이다.
몇몇 당직자들은 당내 여론조사를 토대로 과반수득표에 자신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대다수 국민은 안정 속의 개혁을 바라고 있으며 현정권이 싫더라도 3야당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 쪽은 한때 3김 총재 회담에서「중간평가는 신임과 연계실시 해야 된다」고 한 목소리의 강공책을 쓰는 듯 하더니 여 측이「정면승부」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자 3자가 제 각각으로 갈라지는 등 손발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
평민당은 중간평가를 국민투표로 하면 야당 측이 이기기 힘들다고 분석하고 있고 여 측이 지더라도 평민당 엔 결코 유리할 게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반 노 연합전선을 띠게 되면 그 주도권은 전민련 등 재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고 현정권패배의 경우에도 그 공을 독차지 할 수 없으며 만약 헌정중단과 같은 호한 상태가 오면 야당보다는 장외입김이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김대중 총재가 28일 기자회견에서『신임투표는 야권이 똘똘 뭉쳐 본격적인 한판승부를 해야 한다』고 선 야당 체제정비를 강조한 것도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을 붙인 것이고 게다가 이상수 대변인이『집약된 의견』이라며 민정당이 결사반대하고 있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직선이후 실시하자고 한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안 하는 게 좋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얘기다.
이에 비해 민주당은 자못 강경하고 단호하다.
신임과 연계하여 즉각 실시하라고 계속 윽박지르고 있다.
민정당의 이같은 원칙론에 대해선 김영삼 총재의 승부사적 기질, 또는 최근의 인기상승을 업고 단기전을 한번 해 볼만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한판결전의 선전포고라고 보는 이도 있고 여론에 기초한 명분론이 3야 경쟁에서 돋보일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란 해석도 따르고 있다.
공화당 측은 3김 총재 합의에도 불구, 김종필 총재가 돌아서자마자 노 대통령의 임기보장을 들고 나와 합의사항을 틀어 버림으로써 일관되게 중간평가기피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공화당으로선 현재 소수야당이면서도 의석 수 이상의 대접을 받고 있는 4당 체제에 금이 가는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고 있다고 보여지다.
이처럼 4당은 중간평가를 두고 저마다 큰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실제로 아무도 중간평가에 대비한 조직정비나 동원·홍보의 구체적 조짐은 조금도 보이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서로 상대의중을 파악하려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민정당의 돌변에도 불구하고 5공 청산 마무리협상을 벌일 2월 임시국회의 과정을 거치면서 각 당의 입지와 정세변화에 따라 실시여부 및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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