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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익보다 부작용이 더 많다.-서울시 「분할」에 앞서 생각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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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방자치제실시에 앞서 서울을 5∼6개의 독립 시로 분할하는 문제가 정부내 행정개혁위원회에서 현재 심각하게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고있다.
행정구역은 역사에 뿌리를 두고 주민의 지연적인 소속감을 기초로 하지만 행정수요와 전달방식과 대상이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과 무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구역개편은 늘 진지한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 되며 이점에서 서울의 분할논의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서울분할 개편문제는 관련기관에서 연구중이라고 하니 그 방식과 내용을 이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는 없다. 필자는 단지 이러한 분할논의에 앞서 신중히 고려해야 할 몇 가지 문제점을 살펴봄으로써 이 과제를 현명하게 푸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첫째는 서울분합에 따르는 기술적인 어려움이다. 서울을 나눈다면 현재의 도시지정방식으로는 모두 직할시(그중 하나는 특별시)의 지위가 부여되는 것이 원칙이다. 인구규모 2백만 정도에서 나눈다면 최소 5∼6개, 1백만 정도로 나눈다면 10개 정도의 새로운 직할시가 탄생되어야 한다. 국토의 0·6%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 인구만 가지고 이렇게 많은 직할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단일 도시생활권에 지리적으로 연속되는 많은 직할시를 창설할 경우 수도의 과밀과 경제·사회적 기능의 집중이 더 심화되지 않을까. 한 마리의 어미호랑이 대신 여러 마리의 새끼호랑이를 푸는 형국이니 이는 집중분산의 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유의 대도시 행정체계란 현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제도라는 점이 유의되어야 할 것 같다.
직할시로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성남이나 과천, 부천과 같은 일반 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현재 서울의 22개·행정구는 평균인구 규모상 모두가 자치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를 자치구로 인정하여 구의 회를 구성하고 실질적인 일반시의 기능과 권한의 배분을 가능하도록 개정된 지방자치법의 정신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20여 개의 시를 창설한다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둘째는 분시로 지방자치에서 시민참정의 폭이 넓어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기초단체의 규모가 직접민주정치를 가능케 할만큼 협소한 구역은 영국의 페리시 와스위스의 코뮌이 있으나 이는 자치단체라기 보다는 부락집단에 가깝다. 따라서 대의자치제에서 주민의 참정기회 확대는 구역의 광협보다는 지방의원의 선출방식과 권한, 지역주민의 정치수준, 적정한 중앙과의 권한 배분, 그리고 분산화된 사회적 결정에의 시민참여의식 등에 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의 분할로 주민자치권의 신장이나 참정의 폭이 커질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실로 어렵다.
세째는 분시로 행정의 능률이 증진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서울이 복수의 자치단체로 나뉘어져도 교통·대규모 개발사업계획·상하수도·교육 등 광역적이고 조정작 성격을 갖거나 고도의 전문적 사업은 기초단체에 위임하여 수행할 수가 없다.
이러한 사무는 상급자치단체나 별도의 독립기구 아니면 프랑스파리의 예처럼 임명직 도지사(시장)를 통한 중앙의 통제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기초단체가 대민 사무와 지역관련의 1차적 사무를 처리하고 광역사무를 상급자치단체가 처리케 하는 2원적인 계층 구조는 운영여하에 따라 행정의 마찰·중복·낭비와 기초단체외 권한침해 등의 문제를 안고있다.
이러한 문제는 기초단체의 독립성이 강할수록 더욱 심해 오늘날 대도시행정의 딜레머인 것이다. 런던의 경우가 좋은 예다. 런던은 자치단체간의 사무조정을 상급단체가 하지 못하고 기초단체연합회의 협의에 의하는 형편인데 광역적·전문적 사무는 독립적인 공사 등에 의하여 처리됨으로써 행정의 혼란과 중복, 정치적 통제의 미흡 등이 영국인을 괴롭히고 있다.
서울은 인구가 1천만이 넘는 대도시지만 면적은 6백30평방km에 지나지 않아 인구 7백만에 1천5백80평방km의 런던에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현재의 구를 기초단체로 하여 이층제의 장점을 살린다면 대도시행정의 복잡한 기술적인 수요에 대처하기가 용이한 체제다.
이점에서 독립시나 지방단체를 병합하여 5개의 구로 구성된 일원적 대도시자치행정체제를 발전시킨 뉴욕의 경우는 참고할만하다.
넷째, 서울의 분할이 대도시행정제도의 개혁물결에 역행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오늘날 대도시행정제도의 개혁은 구역의 단편화와 영세화에서 오는 행정의 비능률과 낭비, 그리고 자치단체간의 행정·재정적 격차를 막는 취지에서 개별자치단체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통합·대규모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파리 지역을 케리맨더링하여 수개의 도를 만들고 공산당세력지역을 분리코자한 프랑스의 근래 자치지역변경은 의도한 정치적 효과가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통제를 강화한 시대에 맞지 않는 조치가 되었다.
결론으로 서울시의 분할은 지방자치제도를 올바로 정착시키고 대도시행정의 능률을 세우려는 근본적인 원칙에서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으로 예민한 이 시점에서 문제를 건드려 과연 실익이 있을 것인지, 혹시라도 행정의 다기화, 행정비용의 증대와 지역간의 경쟁과 마찰을 낳는 새로운 문제의 씨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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