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찰조정과 유대의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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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통적 한미관계의 재평가와 재조정의 필요가 절실한 때에「조지·부시」새 미국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하고 노태우 대통령과 한차례 정상회담을 갖기로 결정한 것은 양국 서로를 위해 유익한 일임에 틀림없다.
한국은 지금 8년간의 제5공화국시대의 비리를 청산하는 과정에 있고 미국도 8년「레이건」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크게 변한 내외 사정에 맞추어 새 행정부가 새로운 진로를 마련하는 중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전환점에서 한미관계에 있어서도 서로간에 청산해야 할 부문과 더욱 강화해야 할 유대의 부문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재평가와 재조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하는 시발점으로 양국 정상의 만남은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청산되어야 할 한-미 관계의 과거는 5공 초기 미국이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던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다.
「레이건」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전전대통령을 워싱턴으로 초청함으로써 5공의 정책을 고무했고, 거기서 시작된 유착관계가 한국 민들의 군사독재에 대한 혐오감이 곧 반미감정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5공 말기의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미국이 독재의 문민 화 변혁을 위해 음으로 양으로 조력을 아끼지 않은 사실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 두 가닥의 미국 측 행동이 어떤 동기에서 나왔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강대국의 대외정책에 선악의 동기를 부여하지 않을 만큼 성숙해 있다고 믿는다.
그런 바탕에서 우리는 「부시」행정부가 미국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현재 어렵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민주화 과업에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 주기를 기대한다.「부시」대통령의 방한은 이 점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6공시대의 한미관계에 돌출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남북관계와 북방외교에서 예상되는 큰 변화다. 이 변화는 여러 가지 측면을 안고 있지만 그 중에서 한국이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한 편향성에서 벗어나 참다운 독자노선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
이 측면을 미국은 보다 건전한 한미관계의 앞날을 위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될 것이다. 그것은 한국의 성숙된 국력이 마땅히 가야 할 길임을 인식하고 대등한 한-미 관계와 한국의 성숙한 국력이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 바탕을 둘 때 가능할 것이다.
전환기를 맞아 한미간에는 전통적 유대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할 요소와 변화에 따르는 마찰의 요소를 아울러 갖고 있다. 「부시」행정부의 통상 우선 정책은 마찰의 요소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상극의 요소는 지난 40년 동안 다져진 양국간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할 때 별 위기 없이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가 긴 안목으로 양국관계를 저울질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부시 대통령의 방한이 그런 노력의 첫걸음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며, 점점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는 동아시아의 정치·경제적 역량이 이 지역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준 전후의 기본 틀을 더욱 강화한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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