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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영기의 시시각각

구글과 민주당의 수상한 유착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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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전영기
전영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구글이 한국에서 큰 문제를 일으켰다. 야당 지지자들이 주된 시청층인 ‘고성국TV’에 생방송 중단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수정헌법 1조 ‘언론과 출판의 자유(Freedom of Speech and Print)’를 훼손하는 범법 행위를 1인 유튜브 방송을 상대로 저질렀다고 비판받을 만한 사건이다. 구글코리아(사장 존 리)가 집권 세력인 민주당의 정치적 압박에 굴종하거나 타협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꼬리를 문다. 다음은 지난 16일 밤 구글이 고성국TV 에 보낸 e메일 요지.

유튜브 발칵 뒤집은 ‘고성국TV’ 사건 #104건 삭제 요청 하루 만에 방송 중단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에는 허용되는 콘텐트와 허용되지 않는 콘텐트가 있다. 10월 16일 치 고성국의 ‘가짜뉴스와 말폭탄’이 신고됐고 가이드 위반이 확인되어 삭제했다. 일시적인 제한 조치가 취해졌다.”

여기서 일시적인 제한 조치란 최대 3개월간 생방송 중단을 말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의 사주’ ‘보수언론을 탄압’ ‘구글의 국내 정치 간여’ 등의 비난이 마른 들판에 불길처럼 번져가자 구글은 하루 만에 ‘가짜뉴스와 말폭탄’을 복원시켰다. 민주당 사주론은 하루 전인 15일 박광온·전현희 의원 등 소위 가짜뉴스대책특위 소속이라는 사람들이 역삼동 소재 구글코리아를 찾아가 104개 삭제가 필요한 유튜브 콘텐트를 밀봉 봉투에 담아 전달함으로써 제기되었다. 공산국가나 독재정치가 아닌 곳에서 집권세력이 유튜브에서 특정 정치적 성향의 목소리를 제거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콘텐트 삭제와 관련해 민주당의 이례적인 요청과 구글의 특별한 조치가 하루 사이에 벌어졌으니 민주당 사주론은 합리적인 의심에 해당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당사자들이 억울해서라도 부인할 텐데 박광온 의원 쪽이든 존 리 사장 쪽이든 똑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은 밀봉해 주고받았던 104개 아이템의 비밀을 밝힐 수 없다고 했다. 참 우스운 얘기다. 허위·조작에 확신이 있다면 당당히 공개하면 될 일이지 뭐가 그리 겁나 쉬쉬할까.

고성국의 ‘가짜뉴스와 말폭탄’ 콘텐트는 송영길 민주당 의원의 ‘북한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발언’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탈북자 출신 기자를 판문점 취재에서 배제시킨 조치’를 매섭게 비판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장면을 잘라 봐도 가짜 사실이나 허위조작, 증오나 모독 발언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뿐이 아니다. 누구라도 구글 검색창에 치고 들어가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를 읽어 보시라. 허용되지 않는 콘텐트 범위로 ‘과도한 성적 노출’ ‘유해, 위험’ ‘증오’ ‘노골적인 폭력’ ‘괴롭힘, 사이버 괴롭힘’ ‘스팸, 사기’ ‘위협, 협박’ ‘저작권 침해’ ‘개인정보 침투’ ‘명의도용’ ‘아동 위협’ ‘추가 정책(저속한 언어, 6개월 이상 비활동, 약관 위반 조장, 연령 제한 제품)’ 같은 비정치적인 사안만 길게 나열돼 있다. 정치적 의견을 불허하는 카테고리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유튜브 가이드엔 “정치적 소수의 의견이라도 배척받지 않는다” “언론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정신들로 충만하다.

이로써 16일 내려졌던 ‘삭제’ 및 ‘제한’ 조치는 정상적인 구글 상태에선 벌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심증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주당과 구글코리아 사이에 무슨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던 걸까. 금세 복원됐으니 ‘문제 없는 것 아니냐’는 항변도 있겠으나 ‘말과 글의 자유’를 뺏기지 않기 위한 한국 유튜버들의 필사적인 저항과 분노가 구글 본사에 전달됐기에 복원 조치가 취해졌을 뿐이다. 수상한 유착 의혹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민주당이든 구글코리아든 밀봉된 104개 삭제 요청 콘텐트를 다 공개해야 할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